에세이2018. 6. 13. 00:57

남자옷과 나


작년 추석 연휴 때였던가. 무시무시한 겨울 추위를 미리미리 대비하기 위해 나는 롯데 아울렛에 패딩을 사러 갔다. 디자인이고 뭐고 경기도의 강력한 추위를 버티게 해 줄 가볍고 따뜻한 옷을 사는 것을 목표로, 이런 저런 브랜드 매장을 지칠 때까지 돌아다녔다. 가격까지 저렴하면 금상첨화고.


여러 매장을 돌고 나서 나의 선택지를 이리저리 고민하고 비교하다가 노스페이스 매장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문 앞에 진열되어 있는 파란색 패딩을 발견했다!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으면서(후기) 태어나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샛파랑색이 나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에 감탄한 나는 주저없이 그 옷을 입어보았다. 한겨울에 패딩 안에 두꺼운 옷을 겹쳐 입어도 넉넉하도록, 평소 입는 것보다 두 사이즈 큰 옷으로. 파란 패딩을 입은 거울 속의 나는 굉장히 귀여웠고 따뜻해(더워)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패딩은 그 전까지 봤던, 살지 말지 고민하던 패딩의 1/3 가격이었고 새 옷을 사는 나도, 결제하는 엄마도 흡족하게 그 패딩을 사들고 매장을 나왔다. 매장 밖에서 엄마가 말했다.

"너 이제 남자 옷도 과감하게 입네"


그랬다. 주로 인터넷에서 옷을 사입기 전, 그러니까 웬만하면 엄마 손을 잡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사던 고등학생 때까지의 나는, 뚱뚱했어서 여성용으로 나온 옷은 제일 큰 사이즈조차 작았다. 그래서 인터넷의 빅사이즈 의류 쇼핑몰에서 구매한 옷이 아니면 여성용으로 나온 옷 말고, 더 큰 사이즈가 있는 남성용 옷을 입어야 했다. 그게 나의 뚱뚱함으로 인한 것이니까 너무 수치스러웠다. 옷가게에서 "손님 사이즈는 없어요."라거나 "남성 사이즈로 보셔야겠는데."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비참해졌었다. 여성성이 박탈된 것이라 느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일까? 티셔츠 같은 건 남자 옷과 여자옷이 차이가 별로 안난다지만 바지 지퍼와 셔츠 단추 방향이 다른 게 나는 너무도 신경쓰였다. 나는 평범한 여자애였어서 큰 사이즈 옷이 제작되지 않는 게 문제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타박했었다.


보통의 한국 여성들이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도 자신은 너무 살쪄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나는 정말로 객관적으로 뚱뚱했다. BMI 지수가 중도비만과 고도비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작년 여름의 엄격한 (혹독하진 않은) 다이어트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정상체중 범위에 진입하고, 66사이즈 여성복을 무리없이 입을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남자 옷을 입는 것이 수치스럽지 않았다. 그 당시 SNS에서는 남성용 옷이 같은 가격이라도 훨씬 질과 기능성이 좋단 말이 많이들 오갔었지만 그래도 내가 살찐 상태였다면 남성용 옷을 당당하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남자 옷을 입어도 수치스럽지 않았던 건 그것이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라는 건, 여러 가지 가능한 선택지 중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억압이나 어떠한 상황 때문에 제한된 선택지로 밀려나는 건 자유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남자 옷을 입는 건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이었다. 뚱뚱해서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사이즈에서 밀려나 남자 옷을 입어야만 했던 게 아니라, 나는 여자 옷도 남자 옷도 입을 수 이는데 그저 디자인, 기능, 가격이 맘에 들기 때문에 남자 옷을 선택한 거였으니까.


다이어트는 그런 점에서 정말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나는 다이어트를 해서 옷 사이즈를, 여성복과 남성복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나의 자유를 많이 포기해야 했다. 맛있는 음식, 자극적인 음식, 빵/떡/면을 먹을 자유를 포기하고, 빈둥거릴 자유를 포기하고, 바쁜 날에도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했다. 사실 나는 면요리와 떡볶이를 좋아하고,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고, 시간이 남을 땐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데도.


페미니즘을 접하고, 몸을 옷에 맞추는 게 아니라 옷을 몸에 맞추는 게 맞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 의류회사들이 정신을 차려 큰 사이즈 옷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예쁜옷, 여성용으로 나온 옷을 맘 놓고 입고 싶었다. 방학이 지나 복학을 하고,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엄격한 다이어트를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 시장의 소비자가 되기로 결정했었다. 분명 미의 이데올로기에 부역하는 것이자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었다. 나의 다이어트는, 여성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사회와 타협하려고 스스로의 욕망을 참아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유를 포기해서 자유를 얻었다.  내가 얻은 자유가 '진짜' 자유일까?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