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컵 후기-① / 레나컵 실패기 와 생리컵 후기-② / 블라썸컵 성공기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6월 중순에 생리컵을 주문한 이후로 나는 6월과 7월, 두 번의 생리주기를 거쳤다. 그동안은 여름방학이었어서 나는 생리 기간 중에 생리컵을 착용한 채로 장시간 외출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생리컵이 다 차기 전에 집 화장실에서 생리컵을 비울 수 있었다.
8월의 어느 일요일, 또 생리가 시작되었고 난 '첫날이니 별로 생리양이 많지 않겠지...!' 하며 블라썸컵 스몰을 장착하고 오전 11시쯤 외출을 했다. 어쩌고 저쩌고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때쯤 상상마당시네마에서 하는 <꿈의 제인> GV에 갔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왔는데 그냥 집에 가기 아쉬워서 강남역 교보문고에 갔다. 생리컵을 착용하고 있었으니 생리중이란 사실을 까먹은 채로 뽈뽈거리며 교보문고를 돌아다니다 어느덧 저녁 8시 반이 되었다. 그 때 난 느꼈다. 뭔가가 다리 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것을... 생리컵이 다 찬 것이었다.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주르륵을 한 번 느낀 이후로 생리혈이 새는 것이 더 이상 느껴지진 않았지만 집까지 가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릴테고, 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어서 만일 일이 잘못된다면 길 한복판에서 공포영화를 찍는 일(과장임)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래서 교보문고 화장실에서 생리컵을 비우기로 했다. 밖에서 생리컵을 비울 일이 생길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나왔기 때문에 컵을 씻을 수 있는 물 같은 것이 없었다. 화장실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생리컵을 비우고 칸을 나와 세면대에서 생리컵을 씻고 바로 다시 칸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그냥 피가 꽉 찬 생리컵을 비우고 휴지로 대충 닦은 후 다시 착용했다. 그것이 비위생적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문제는 손에 피가 많이 묻었다는 것이었다. (생리컵을 쓰면 생리혈에서 악취가 나지 않아 손에 묻어도 더럽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손도 휴지로 대충 닦고 나가서 씻었다. 누가 볼까 걱정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밖에서 생리컵을 비울 땐 생수 같은 걸 들고 들어가서 씻으면 된다던데 그것보단 물티슈가 있었다면 손과 생리컵을 편리하게 닦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무사히 생리컵을 비우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빨간 버스를 탔다. 앞으로는 생리 때 물티슈만 있다면 밖에서 생리컵을 비우는 것도 할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언덕을 넘었더니 드넓은 평지가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고 가방을 열었더니 그날 들고 나갔던 워터보틀에 먹다 남은 생수가 들어있는 것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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