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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8.28 다이어트를 그만둔 이유
  2. 2018.06.19 왜 내 겨털은 햄보칼 수가 엄써!!!!!
  3. 2018.06.13 남자옷과 나
에세이2018. 8. 28. 23:32

다이어트를 그만둔 이유


작년 9월쯤이었던가. 나는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감자튀김이 맛이 없었다. 그때 난 다이어트를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먹는 걸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날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 2차 성징을 겪으며 보통 체형 정도가 되긴 했지만, 그때도 나는 스스로가 살쪘다 생각했었고, 그 잠깐의 뚱뚱하지 않았던 순간조차도 고입 대비와 끊임없는 야식 때문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렇지만 맘 편히 먹는 것은 어려웠다. 가족과 식사를 할 땐 엄마가 그만 먹으라 하고 오빠새끼가 뚱뚱하다 놀린대도 마음 편히 먹었지만, 급식을 먹을 땐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이 먹는 게, 내가 뚱뚱한 원인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것 같아서 애써 식욕을 참고 먹을 것을 남기곤 했다. 아무래도 급식은 식판에 1인분 정량을 배식받으니 먹는 양이 정확히 비교되어 괜히 마음이 더 불편했던 것 같다.


몸을 망치는 다이어트 이후 나는 헬스장에서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았다. 그때 트레이너에게 식단 조절 방법을 배웠다. 다이어트식은 탄수화물(밥, 고구마 등)+단백질(고기, 두부, 생선, 달걀)+야채 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PT를 받으며 나는 내가 먹는 모든 것을 사진 찍어 그때그때 트레이너에게 카톡으로 보내야 했다. 2개월 뒤, 나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어 잠시 다이어트를 쉬었다. 쉬는 기간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었다.


작년 여름방학 때, 딱히 뾰족한 계기는 없었지만 나는 다시 한번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 사 먹는 것 이외의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그 외엔 집에서 닭가슴살과 야채, 현미밥을 먹었다. 나는 야채 종류, 특히 토마토, 파프리카 같은 걸 싫어해서 그나마 먹을 만한 야채는 양상추, 양배추, 상추 정도였다. (PT를 받을 당시 트레이너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굳이 토마토 같은 걸 먹을 필요는 없다고 했었다) 거기다 드레싱을 잔뜩 뿌려 먹었다. 그래야 먹을 만하니까. 이 정도도 못 하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나 자신을 혹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끼니 시간 즈음 이외엔 배가 고프진 않았다. 굶지 않고 잘 챙겨 먹었으니까. 엄격하지만 혹독하진 않았다. 69kg이 되면 두끼떡볶이에 가서 떡볶이를 잔뜩 먹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내 자제력이 얼마나 놀라웠냐면, 작년 8월 한국여성학회 캠프에서 야식으로 피자가 나왔는데도 입도 대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엔 참았던 거였지만 식이조절을 하고, 운동하러 가는 건 점차 습관이 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살이 빠졌다. 극적으로 살이 빠지진 않았지만 다이어트 기간이 길어지니 옷 사이즈가 줄어갔다. 나는 닭가슴살의 촉촉함을 느끼고 있었고, 양상추에 뿌리는 드레싱도 점점 양이 적어지고 있었다. 라면 먹는 게 더 이상 좋지 않았고 자주 가던 떡볶이집의 떡볶이가 자극적이라 느껴졌다. 내 체형도, 입맛도 변해갔다.


내가 좋아하는 건 그런거였다. 고기, 기름진 것, 크림, 치즈, 버터, 하얀 음식들...빵과 면, 떡... 다이어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음식들이 나는 좋았다. 다이어트 음식을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부역자인 내가, '뚱뚱해도 괜찮아! 내 몸이 들어가는 옷을 옷가게에서 살 수 없는 건 패션 산업의 잘못이야!' 하고 소리치는 내면의 페미니스트를 달래가며 빻은 사회와 타협하는 과정이었다.


입맛이 변하는 건, 나를 잊어가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먹는게 즐겁지 않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먹었다. 짜고 맛없었다. 그 때 충격을 받았다. 맥도날드 감자튀김이 너무 좋아서 항상 햄버거 단품이나 콤보가 아닌, 세트 메뉴를 시키던 나였는데. 혼란이 왔다. 타협이고 절제일 뿐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난 다이어트를 관두고 그냥 맛있는 거 먹으면서 나름대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69kg 이 되면 두끼떡볶이에 가야지'하고 다짐했던 때가 아득할 정도로, 지금은 객관적으로 뚱뚱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타협' 없이, 망설임 없이 엄격한 다이어트를 그만둘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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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18. 6. 19. 00:18

왜 내 겨털은 햄보칼 수가 엄써!!!!!


효리네 민박을 정주행 하면서, 다소 뻣뻣했던 아이유가 효리 언니를 따라 열심히 요가를 배우고 나니 유연해진 것을 보고 한 뻣뻣 하는 나도 열심히 하면 유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 근처 요가원에 등록했다.


요가를 할 때 따로 정해진 복장은 없지만, 몸을 마구 뒤집어 버리는 동작을 할 때 옷이 말려올라가거나 하면 신경이 쓰여서 동작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몸에 딱 붙는 상의와 하의를 입는 게 좋다고 했다. 나에겐 운동할 때 입는 레깅스는 있지만 작년의 다이어트 때문에 갖고 있던 상의는 모두 헐렁해져서 딱 붙는 상의는 검은색 민소매 셔츠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제모를 안 한 지 좀 시간이 지나서 반 정도 털이 성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의 털들은 색도 진하고 숱도 많고 곱슬거려서 다른 사람들의 털보다 훨씬 존재감이 크다...! 그래서 일단 첫날엔 민소매 티를 입고 위에 헐렁한 반팔 티를 입고 갔다. 가서 눈치를 좀 보고 민소매를 입을지 말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요가 수업을 받은 날, 나는 내가 가진 최대한의 눈치를 발휘해서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요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었고, 대부분 반팔을 입고 있었다. 민소매를 입은 사람은 딱 한 명 있었고, 그 사람의 겨드랑이는 정말 털 하나 없이 깨끗했다.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그날 밤, 집에 와서 또 한번 고민했다. 밤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모를 하고 내일 민소매를 입을까? 그치만 지금까지 털을 기른 게 아깝다.

그래도 털을 마구 달아놓은 채로 팔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요가 동작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러면 제모를 하지 말고 겨털이 잘 안 보이게 탈색을 할까? 하지만 그러면 같은 숱의 겨털이라도 덜 풍성해 보이지 않을 것 같고 그건 왠지 자존심이 좀 상하는데..

그냥 깨끗하게 제모를 할까? 하다가, 왁스 스트립으로 겨털을 뽑아낼 때의 고통이 상기되었다. 왁싱할 때 핏방울이 맺히는 건 예사인데. (면도기로 겨털을 밀면 깨끗하게 제모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다시 날 때 따갑다. 나는 예전에 잦은 면도로 피부가 상해서 피부과에 간 적도 있었다.) 나는 아픈 걸 잘 참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니까. 아, 참으로 어렵다.


왜 내 겨털은 햄보칼수가업서!!!



왜 나는 자신있게 제모를 끊을 수 없을까. 심지어 요가 수업은 다들 자기 운동 하느라 힘들어서 남 신경쓸 시간도 없고,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은 전부 여성이었는데. 그래서 다들 여자의 겨드랑이에 털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알고 있을텐데. 제모를 안 해도 되는 천혜의 환경 아닌가. 그런데도 제모 없이는 민소매를 못 입는 내가 미웠다. 내 겨드랑이도 날 미워하겠지.




밤새 고민 후 다음날 나는 요가원에 반팔티를 입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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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18. 6. 13. 00:57

남자옷과 나


작년 추석 연휴 때였던가. 무시무시한 겨울 추위를 미리미리 대비하기 위해 나는 롯데 아울렛에 패딩을 사러 갔다. 디자인이고 뭐고 경기도의 강력한 추위를 버티게 해 줄 가볍고 따뜻한 옷을 사는 것을 목표로, 이런 저런 브랜드 매장을 지칠 때까지 돌아다녔다. 가격까지 저렴하면 금상첨화고.


여러 매장을 돌고 나서 나의 선택지를 이리저리 고민하고 비교하다가 노스페이스 매장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문 앞에 진열되어 있는 파란색 패딩을 발견했다!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으면서(후기) 태어나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샛파랑색이 나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에 감탄한 나는 주저없이 그 옷을 입어보았다. 한겨울에 패딩 안에 두꺼운 옷을 겹쳐 입어도 넉넉하도록, 평소 입는 것보다 두 사이즈 큰 옷으로. 파란 패딩을 입은 거울 속의 나는 굉장히 귀여웠고 따뜻해(더워)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패딩은 그 전까지 봤던, 살지 말지 고민하던 패딩의 1/3 가격이었고 새 옷을 사는 나도, 결제하는 엄마도 흡족하게 그 패딩을 사들고 매장을 나왔다. 매장 밖에서 엄마가 말했다.

"너 이제 남자 옷도 과감하게 입네"


그랬다. 주로 인터넷에서 옷을 사입기 전, 그러니까 웬만하면 엄마 손을 잡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사던 고등학생 때까지의 나는, 뚱뚱했어서 여성용으로 나온 옷은 제일 큰 사이즈조차 작았다. 그래서 인터넷의 빅사이즈 의류 쇼핑몰에서 구매한 옷이 아니면 여성용으로 나온 옷 말고, 더 큰 사이즈가 있는 남성용 옷을 입어야 했다. 그게 나의 뚱뚱함으로 인한 것이니까 너무 수치스러웠다. 옷가게에서 "손님 사이즈는 없어요."라거나 "남성 사이즈로 보셔야겠는데."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비참해졌었다. 여성성이 박탈된 것이라 느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일까? 티셔츠 같은 건 남자 옷과 여자옷이 차이가 별로 안난다지만 바지 지퍼와 셔츠 단추 방향이 다른 게 나는 너무도 신경쓰였다. 나는 평범한 여자애였어서 큰 사이즈 옷이 제작되지 않는 게 문제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타박했었다.


보통의 한국 여성들이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도 자신은 너무 살쪄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나는 정말로 객관적으로 뚱뚱했다. BMI 지수가 중도비만과 고도비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작년 여름의 엄격한 (혹독하진 않은) 다이어트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정상체중 범위에 진입하고, 66사이즈 여성복을 무리없이 입을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남자 옷을 입는 것이 수치스럽지 않았다. 그 당시 SNS에서는 남성용 옷이 같은 가격이라도 훨씬 질과 기능성이 좋단 말이 많이들 오갔었지만 그래도 내가 살찐 상태였다면 남성용 옷을 당당하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남자 옷을 입어도 수치스럽지 않았던 건 그것이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라는 건, 여러 가지 가능한 선택지 중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억압이나 어떠한 상황 때문에 제한된 선택지로 밀려나는 건 자유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남자 옷을 입는 건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이었다. 뚱뚱해서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사이즈에서 밀려나 남자 옷을 입어야만 했던 게 아니라, 나는 여자 옷도 남자 옷도 입을 수 이는데 그저 디자인, 기능, 가격이 맘에 들기 때문에 남자 옷을 선택한 거였으니까.


다이어트는 그런 점에서 정말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나는 다이어트를 해서 옷 사이즈를, 여성복과 남성복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나의 자유를 많이 포기해야 했다. 맛있는 음식, 자극적인 음식, 빵/떡/면을 먹을 자유를 포기하고, 빈둥거릴 자유를 포기하고, 바쁜 날에도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했다. 사실 나는 면요리와 떡볶이를 좋아하고,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고, 시간이 남을 땐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데도.


페미니즘을 접하고, 몸을 옷에 맞추는 게 아니라 옷을 몸에 맞추는 게 맞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 의류회사들이 정신을 차려 큰 사이즈 옷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예쁜옷, 여성용으로 나온 옷을 맘 놓고 입고 싶었다. 방학이 지나 복학을 하고,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엄격한 다이어트를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 시장의 소비자가 되기로 결정했었다. 분명 미의 이데올로기에 부역하는 것이자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었다. 나의 다이어트는, 여성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사회와 타협하려고 스스로의 욕망을 참아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유를 포기해서 자유를 얻었다.  내가 얻은 자유가 '진짜' 자유일까?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