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2017. 9. 9. 17:59

생리컵 후기-① / 레나컵 실패기생리컵 후기- 블라썸컵 성공기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6월 중순에 생리컵을 주문한 이후로 나는 6월과 7월, 두 번의 생리주기를 거쳤다. 그동안은 여름방학이었어서 나는 생리 기간 중에 생리컵을 착용한 채로 장시간 외출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생리컵이 다 차기 전에 집 화장실에서 생리컵을 비울 수 있었다.


8월의 어느 일요일, 또 생리가 시작되었고 난 '첫날이니 별로 생리양이 많지 않겠지...!' 하며 블라썸컵 스몰을 장착하고 오전 11시쯤 외출을 했다. 어쩌고 저쩌고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때쯤 상상마당시네마에서 하는 <꿈의 제인> GV에 갔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왔는데 그냥 집에 가기 아쉬워서 강남역 교보문고에 갔다. 생리컵을 착용하고 있었으니 생리중이란 사실을 까먹은 채로 뽈뽈거리며 교보문고를 돌아다니다 어느덧 저녁 8시 반이 되었다. 그 때 난 느꼈다. 뭔가가 다리 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것을... 생리컵이 다 찬 것이었다.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주르륵을 한 번 느낀 이후로 생리혈이 새는 것이 더 이상 느껴지진 않았지만 집까지 가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릴테고, 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어서 만일 일이 잘못된다면 길 한복판에서 공포영화를 찍는 일(과장임)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래서 교보문고 화장실에서 생리컵을 비우기로 했다. 밖에서 생리컵을 비울 일이 생길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나왔기 때문에 컵을 씻을 수 있는 물 같은 것이 없었다. 화장실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생리컵을 비우고 칸을 나와 세면대에서 생리컵을 씻고 바로 다시 칸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그냥 피가 꽉 찬 생리컵을 비우고 휴지로 대충 닦은 후 다시 착용했다. 그것이 비위생적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문제는 손에 피가 많이 묻었다는 것이었다. (생리컵을 쓰면 생리혈에서 악취가 나지 않아 손에 묻어도 더럽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손도 휴지로 대충 닦고 나가서 씻었다. 누가 볼까 걱정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밖에서 생리컵을 비울 땐 생수 같은 걸 들고 들어가서 씻으면 된다던데 그것보단 물티슈가 있었다면 손과 생리컵을 편리하게 닦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무사히 생리컵을 비우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빨간 버스를 탔다. 앞으로는 생리 때 물티슈만 있다면 밖에서 생리컵을 비우는 것도 할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언덕을 넘었더니 드넓은 평지가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고 가방을 열었더니 그날 들고 나갔던 워터보틀에 먹다 남은 생수가 들어있는 것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Posted by 퍼포린
후기2017. 7. 14. 00:12

생리컵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생리컵 너무 좋아, 너도 꼭 써!" 라고 말한다.

하지만 뭐든지 첫 시도는 어렵다. 심리적인 이유도 클거고, 초기 비용이 비싸서 신중하게 구매해야 한다. 직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배송비도 비싸다. 곧 국내에도 생리컵이 정식 수입된다고 하니 좀 더 쉽게 생리컵을 구하게 되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서 생리컵에 관한 정보, 사용법들을 아주 꼼꼼히 찾아봤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생리컵 구매를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첫 생리컵 구매 전 크게 도움이 되었던 사이트를 모아서 포스팅해놓기로 했다.


1. 생리컵의 장단점과 의문 불안에 대한 답가 (블로그 포스팅)

-이 블로그에 있는 글들이 정말 상세하고 큰 도움이 된다. 이 포스팅은 버진이 써도 되는지(당연 된다), 피가 역류하진 않는지, 비위생적이진 않은지 등등의 오해를 풀어주는 내용이다.


2. 자신에게 맞는 생리컵을 고르자! "나의 골든컵 찾기" (블로그 포스팅, 필독!)

-생리컵을 고를 때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이 게시글에 다 있다.

-먼저 생리컵을 고를 땐 포궁경부의 높이를 생리중에 재봐야 한다. 

• 손가락 전체가 다 들어가도 끝에 뭐가 닿지 않으면 = high cervix 높은 포궁
• 손가락 대부분 넣어서 닿으면 = normal cervix 보통 높이 포궁
• 손가락 일부 넣었는데 닿으면 = low cervix 낮은 포궁 약 5센치 이하

-포궁경부의 높이를 알게 되었으면 생리혈의 양, 생리컵의 경도를 고려해서 생리컵을 고르면 된다.


3. 생리컵은 어디서 구매하나요?(feat.생리컵 브랜드별 특징) (블로그 포스팅)

-2번 글을 읽었으면 3번 글에서 여러 종류의 생리컵을 비교해보며 본인에게 맞는 생리컵을 찾아보면 된다. 구매처도 함께 나와있다.


4. 생리컵 사용법 (유투브 영상)

-생리컵 사용법을 유리병을 이용해 보여주는 동영상.(성격이 급하다면 2분부터 시청!)


5.생리컵, 넌 뭐니? (유투브 영상)

-프란(PRAN)에서 제작한 영상인데 4번의 영상과 내용은 같은데 더 짧다. 어차피 나같은 사람이라면 둘 다 보게 되겠지만.


6. 생리컵 빼는 게 어려우신 분 보세요 (유투브 영상)

-결과적으로 나한텐 별로 도움이 안 됐지만,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 영상을 보고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약하자면 생리컵을 뺄 때 진공이 잘 안풀리면 컵을 비틀어서 바로 변기에 생리혈을 버리면 된다는 내용.


7. 월경컵 - 페미위키

-생리컵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가 나와있다. 페미위키의 좋은점은 글의 링크를 통해 다른 글로 넘어가기가 쉽다는 것!

-월경컵 비교표 문서에는 다양한 생리컵을 비교한 정보가 있다.

-분류:성격/월경컵 문서를 보면 페미위키에 작성된 모든 종류의 생리컵 링크가 있고, 링크로 들어가면 생리컵 공식홈, 사이즈, 색상 같은 정보들이 나와있다.


8. 네이버 블로그의 생리컵 후기들

-7번까지의 사이트를 다 보고, 사고 싶은 생리컵 후보들이 생겼을 때 생리컵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했다. 생각보다 많은 후기가 블로그에 올라와 있었는데, 아직 생리컵 국내 판매처가 없어서 블로그 검색결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바이럴 마케팅 게시글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좋았다.


Posted by 퍼포린
에세이/책이야기2017. 6. 27. 02:00

<82년생 김지영>


세간의 화제(?)인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읽고 울었다는 후기들을 많이 봐서 나도 눈물줄줄 할까봐 자기 전 침대 위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읽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났다. 김지영 씨의 삶이 내가 살아온 삶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김지영 씨가 만난 여자들 중엔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쩌면 나의 삶보다 더 진보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지영 씨보다 열 댓 살은 어린데 말이다.


이내 막막해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김지영 씨의 삶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듯, 앞으로의 삶도 김지영 씨의 삶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지영 씨가 김지영 씨의 어머니와 별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듯, 김지영 씨의 딸도 김지영 씨와 별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시대속에서 애써 진보를 찾아보게 된다.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했던 김지영 씨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김지영 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뿐이다. 세대가 교체된 것에 비해 너무 작은 변화이지 않은가.


답답하고 부당하고 나를 분노케 했던 김지영 씨의 연대기를 들은 사람들도 그 부조리를 인지하나, 본인이 부조리에 가담하고 있으며 그것에 맞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현실이다. 세상은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여성은 해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해방되지 않으면 개인의 해방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으로 지정된 사람들은 모두 삶의 어느 순간에 부조리를 깨닫고 좌절하는 순간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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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책이야기2017. 6. 16. 20:51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7장 중 1장을 읽었으니 읽기 시작했다고 해야하나.

1장까지 읽고 나는 감탄했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화자는 생리를 시작하는데, 그 부분을 어떠한 판타지적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실 남성 소설가의 글을 읽어보면 여성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실제 여성이 아니라 본인의 환상 속 여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이 싫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소설을 읽기 전 작가의 사진을 먼저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여성 작가가 썼을 거라 짐작했을 것 같다. 


"입국 심사대 앞에 서 있을 때 생리가 터졌어. 줄 선 시간이 아까워서 화장실에 갈까 말까 조금 망설였는데, 사실 망설일 상황이 아니었어. 생굴 같은 게 막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어. 화장실에 가서 봤더니 팬티에 이미 피가 꽤 묻어 있는 거 있지. 가방에 생리대가 하나 있기는 했는데 여벌 속옷은 당연히 없었지. 화장실에 있는 휴지로 최대한 피를 닦아내고 팬티에 생리대를 붙였어. 달리 방도가 없잖아."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 12쪽

이 부분에서 나는 김훈 작가의 <언니의 폐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불가피했다,...

그래 이게 여성이지. 이게 생리지.
아직 1장밖에 안 읽어봤지만 남은 부분들도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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