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를 때 생겼던 일
머리를 짧게 잘랐다. 머리를 잘라본 경험은 많지만, 이렇게까지 피곤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머리를 자르러 가기 전, 나는 근처에 있는 미용실 중 남성 커트비와 여성 커트비가 같은 곳을 찾아보았다. 여성 커트비가 이유 없이 더 높다는 기사에 달렸던, 자기는 그런 곳 본 적 없단 댓글이 무색하게도,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수많은 미용실 중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여성 커트비가 3천원에서 5천원정도 높았다. 어쨌든 나는 두 군데 중 더 비싸고 후기도 좋은 곳으로 갔다. 비싸지만 돈을 더 받아도 거기서 머리를 자를 것이라는 후기가 여러 개 있어서 마음이 홀랑 넘어갔었다.
여남 커트비가 같은 곳이라면 왠지 미용사도 젠더 감수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왜 그런 쓸데없는 노력을 했는가.. 긴 생머리에 C컬을 넣는 게 더 좋겠다고 하는 미용사의 말에 나는 숏컷을 할 것이라 했고, 미용사는 "남자친구가 허락해 줬어요?" 라고 물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싸우고 싶진 않았다. 싸웠다가 미용사가 내 머리를 이상하게 잘라놓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래서 "허락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돌이켜봐도 잘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네/아니오를 묻는 질문에 제 3의 선택지로 답하는 것이 굉장히 페미니스트다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치만 "남자들은 보통 머리 긴 여자를 좋아하잖아요" 라는 말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가요 하하.. 라고 했는데 뭐라고 답을 하는게 좋았을까 싶다. 저는 짧은 머리가 좋은걸요. 정도로 이야기할걸 그랬나. 왜 숏컷을 하기로 했냐고도 물어봐서, 새벽에 출근하니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이 길어서라고 대답했다.
미용사분은 빻은 이야기를 좀 하긴 했지만, 앞머리를 만들지 말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제가 알아서 해드릴게요." 라고 했을 땐 신뢰도가 확 올라갔다. 그 말을 하고 나서부턴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행여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나는 말을 걸지 않았고, 그분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다 잘라갈 때 미용사는 나에게 염색이나 펌은 안하시냐고 했다. 나는 일 끝나고 와서 운동하고 씻고 나면 잘 시간인데 염색이나 펌은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아보니 나의 검은 머리가 가장 잘 어울리니까 염색하지 말라고 했다고도 말했다. 이어진 미용사의 말이 충격이었는데, "염색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안그래도 숏컷해서 무서운데 검은 머리면 더 무서워요." 난 그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어쨌든 커트가 끝이나고 결제를 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다음에 또 오라며 명함을 주셨지만 그 미용실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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