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2024. 11. 10. 23:13

대도시의 사랑법을 2번 보고 와서, 재밌는 장면들이 많았고 같은 영화를 본 친구들과 장면별로 앓기 위해 기록을 남겨보았다. 사실 2번째로 본것도 조금 시간이 지났는데 환절기 독감에 걸려서 약 2주의 시간이 순삭되는 바람에 이제야 쓰게 되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미친X과 게이가 만났다! 바야흐로 애니멀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시선을 싹쓸이하는 과감한 스타일과 남 눈치 보지 않는 거침없는 애티튜드로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자유로운 영혼 재희. 그런 재희가 눈길은 가지만 특별히 흥미는 없던 흥수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누구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하필 재희에게 들켜버린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재희와 흥수는 알게 된다. 서로가 이상형일 수는 없지만 오직 둘만 이해할 수 있는 모먼트가 있다는 것을. 남들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하고, 재희와 흥수는 사랑도 인생도 나답게! 의기투합 동거 라이프를 시작하는데...
평점
-
감독
이언희
출연
김고은, 노상현, 정휘, 오동민, 박선후, 김채은, 강나언, 권영은, 신지우, 서벽준, 방정민, 김찬일, 박지안, 장혜진, 이상이, 곽동연, 주종혁, 이유진, 최유화, 이용이, 박성일, 김중기, 한현민, 홀랜드, 용진



게시글 내용은 전부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들은 안 읽는 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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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두 주인공은 불어불문학과 10학번이다. 대학교 1학년이 된 흥수는 '불문과 고추밭 단체방' 이라는, 남학생들만 있는 카톡방에 초대된다. 흥수는 초성으로 된 욕을 남기고 바로 단톡방을 나온다.
요즘도 대학생들이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두 주인공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교에 다녔는데 남자 동기들이 자기들끼리만 있는 단톡방이 있다고 해서 엄청 섭섭해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초대해달라고 했더니 내가 보면 안되는 '더러운' 이야기를 주로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2015년 쯤부터는 대학가 남톡방에 대한 고발 기사가 많이 쏟아져 나왔는데, 흥수같은 친구들이 내부고발 했던 걸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2. 강의가 시작되기 전, 불문과 남학생들은 강의실에 모여서 동기가 게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땐 저렇게 강의 전에 수다(?)떠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서 조금 신기했다. 우리 과는 학생이 많아서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3. 영화를 보면서는 '구재희의 난' 장면에서, 처음으로 놀랐다. 이후에도 몇 번 더 놀랐고...

4 -1. 재희와 흥수는 유흥을 즐겼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재희는 유흥피플 치고는 맨날 앞자리에 앉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 이런 역설이 웃겼다.

4 -2. 코로나 이후 유흥이 사라지고 저속노화가 유행이 된 2024년에 보기엔 술 마시고 클럽에 다니는 모습이 별로 좋아보이진 않지만, 그땐 정말 그게 힙하고 좋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고, 퇴근 후 운동하고 쉬다가 10시 30분에 자는게 힙하다고 생각한다.

5. 재희와 흥수는 불어불문학과 10학번이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곡인 missA의 Bad girl Good girl은 2010년 7월 1일에 발매되었다.

6. 재희와 흥수가 같이 옷을 사러 갔을 때, 흥수가 똑같은 셔츠를 또 사는 장면이 너무 웃겼다. 나도 같은 옷을 여러벌 사곤 한다.

7. 정말로 대학생이 갈만한 맛없고 양많고 가격싼 술집으로 보이는 곳에서 게이 술번개가 진행되어서 잠깐 추억여행을 했다.

8. 흥수의 썸남인 수호 역으로 나오는 배우 연기가 좀 튀는 느낌인데... 안그래도 중저음 위주의 다른 배우들에 비해 하이톤의 목소리이다 보니까 더욱 더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후반부로 가면서 많이 나아지지만.

9. 재희와 흥수의 사랑은 끊임없이 대비된다. 사랑이 고프고, 연애에 진심인 재희는 하남자 메들리로 만나고, 사랑에 시니컬한 흥수는 찐사랑을 하고 있다. 연애 상대를 침대에 눕힐 때도 흥수는 푹신한 침대에서 편안하게 진행하는데(?), 재희는 남자친구를 밀었더니 돌침대였다.

10. 그런데 흥수씨, 술집에서 토하고 나서 키스하기 전에 양치는 했나요...?

11. 재희가 만난 하남자 1은 마마보이였다. 대학생인데 물약을 먹고, 엄마가 청소해줄테니까 공부하라고 하고.

12. 재희가 3층 집 베란다에 누가 있다고, 스토킹 당한 것 같다고 하는데 흥수가 안 믿어줘서 서운했다. 그렇지만 3층까지 올라올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한 걸지도...

13. 재희와 흥수가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재희는 면도기를 쓰고, 흥수가 BB크림을 바르는 장면이 화면 분할로 나온 것은 성역할 클리셰를 뒤집은 것 같아 흥미로웠다. 나중에 서로의 것을 몰래 쓰는 거라는 내용이 나온다.

14. 재희는 마마보이와 헤어지고 하남자2와 비밀연애를 시작하는데, 하남자2가 재희한테 '야!' 라고 소리지를 때부터 싸했다.

15. 사랑에 빠진 재희가 미끄럼틀에 누워 밤하늘을 보는 장면에서, 흥수가 사랑은 도파민의 농간이라고 할 때, 문과의 몸에 잘못 들어간 이과 남자 같았다. 공대에 저런 사람 많은데 ㅋㅋ

16. 수호가 팔꿈치에 혓바닥 닿는다고 말해서, 흥수가 집에 와서 거울 보면서 따라해보는 장면이 너무 웃겼는데, 같이 보는 관객들이 다같이 크게 웃어서 너무 좋았다. 사실 나는 케이팝 공연장에 자주 가다보니,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은 리액션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다같이 웃고 놀라고 하면 나는 참 좋던데.

17. 이 영화의 음악도 너무 좋았는데, 대학 축제에서 비눗방울이 날리고 스텔라장의 노래가 나오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짠단짠 영화라 달콤한 장면이 나오면 꼭 비극적인 장면이 뒤이어 나오더라. 비눗방울 장면 이후에 재희는 하남자2가 양다리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비참하게 차인다.

18. 흥수가 수호의 학교에 놀러가는데, 수호가 하는 퀴어동아리 이름이 '커밍투게더'인걸로 봐서, 수호는 고려대 재학 중이란 설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퀴동에서 부르는 노래가 딱 음악감독인 프라이머리 노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9. 찌그러진 우유갑을 그린 아이 이야기.

자기랑 다르면 그걸 열등하다고 생각해야 맘이 편하거든. 그게 진짜 열등한 줄도 모르고.


20. 재희가 임신중절 하러 갔다가 의사에게 개소리를 듣고 나왔는데 흥수가 "꼰대들이 하는 말에 신경쓰지마" 라고 하는 것에, 흥수가 남자라는 사실이 확 다가왔다. 나는 "신경쓰지마"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이미 공격적인 말을 들어서 기분이 상했는데 그 말을 들은 걸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신경쓰지말라는 말은 상한 기분을 내 앞에서 티내지 말라는 뜻 정도밖에 될 수가 없다. 섬세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21. 우리가 동거중이고 낙태까지 했다는 소문을 듣고, 재희는 "집단지성의 힘은 위대하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이 진짜 웃겼다.

22. 강아지를 입양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재희가 "내가 좀더 개처럼 살아볼게, 멍멍!"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참 사랑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23. 사무실에서 신입사원들 인사시키는 부분 보고 우리 회사에서는 저렇게 안하는데... 라고 생각했다. 다른 회사는 어떠려나.

24. 재희가 만난 하남자3은 법무법인 승부에 다니는 변호사이다. '승부'라는 이름도 뭔가 맘에 안들었고, 재희가 상사 욕을 할 때, '상사 업무스타일에 맞추는 것도 능력이야' 라는 공감 능력 떨어지는 말을 해서 너무 싫었다.

25. 수호가 집착도 사랑이라고 하는 내용은 무엇을 위한 빌드업일까? 이런 내용이 나온 이유는 뭘까?

26. 수호가 커밍아웃하고 오픈리 게이로 살겠다고 해서 흥수가 헤어지자고 한 장면부터 수호 연기의 어색함이 사라지고, 수호가 장국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27.

"오빠가 싫어해. 자기보다 커보인다고."


28. 재희와 흥수가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장면에서, 재희가 남들과 똑같은, '재미없는'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 너무 잘 표현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박상영 작가가 나와서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 풀어줬다.

29. 재희는 갑자기 찾아온 흥수의 어머니에게, 자기가 영부인 사주라서,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다 잘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어머님은 재희랑 같이 좋아한다.

30. 보일러가 고장나서 흥수와 재희가 같은 침대에서 잔 다음날, 재희가 "잘 잤어? 씨, 벨롬" 이라고 인사한다. 이 장면 짱 웃긴데 바로 다음에 하남자3이 나와서 흥수와 재희를 때린다. 이 영화는 계속해서 달콤한 장면(웃기거나 아름다운)과 짠 장면(폭력적이거나 슬픈)을 롤러코스터처럼 오간다.

31. 하남자3은 재희가 아이스를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준다. 재희는 흥수가 화나면 웃는 것도 아는것과 대비된다. 흥수랑 싸워서 경찰서 갔을 때 "나 변호사야~" 라고 하는 것도 진짜 하찮았다. 그런데 사실 저런 하남자 역할을 잘 하는 배우의 본체가 현실세계에서는 좋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32.

"보호필름 떼고 하는거야, 사랑은. 이 겁쟁아"

33. "집착이 아닌건 사랑이 아니다" 이후에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 장면인데 흥수가 베란다에서 담배피는 장면보고 좀 민폐라고 생각했다.

34. 119에 전화할 땐 침착하게 주소부터 불러야 하는데... 만약 저런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침착할 수 있을까?

35.

"복분자..."
"복부자상이요?"


36.

"서울에 씨발 방세가 얼만데. 우리가 이상해?"
"아니 전혀."


37. 경찰서에서 흥수가 본인이 게이라고 밝히는 장면은, 어떻게 보면  흥수의 첫 대국민(?) 커밍아웃인데 박수 받아서 좋았다.

38.

"네가 너인게, 네 약점이 될 순 없어."

39. 회식 장면에서 재희가 게이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는데, 이 때 남성 동료를 바스트샷으로 잡아줘서, 나는 당연히 그 분이 게이인 설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재희와 결혼하게 될 줄이야.


40. 신부가 빨간 스니커즈를 신고 입장하는 결혼식 장면이 인상깊었다. 보통의 결혼식장은 1시간 단위로 예약이 잡혀있고 30분 예식-30분 사진촬영을 하기 때문에, 치울 시간이 부족해서 저렇게 컨페티를  못 뿌리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41. 흥수가 결혼식 축가로, 춤을 추면서 Bad Girl, Good Girl을 부르는 장면은 영화를 보기 전에 유튜브 숏츠로 보고 갔었다. 그런데 흥수가 이렇게 과묵한 캐릭터일줄 몰랐다. 춤추며 노래하는 장면이 지금까지 나온 내용과 대비되었다 . 이렇게 춤을 춘게 감춰온 본인의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친구를 위한 억텐이었을까? 아마도 원작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을지도.

42. 재희는 신혼여행가면서 책상 위에 늘 올려두었던 자궁 모형을 한국에 두고 갔다. 이 자궁 모형은 재희가 임신중절이 필요해서 산부인과에 갔을 때, 폭언을 했던 의사에게서 도망치며 뽑아왔던 건데, 하남자3이 재희를 때릴 때, 이 자궁 모형으로 재희가 하남자3의 머리를 뒤에서 쳐서 쓰러트리고 근처 지구대로 뛰어간다. 가장 비참했던 순간에 얻어온 전리품이, 나중에는 자신을 향한 폭력을 잠깐 멈춰주는 도구가 된 것이라서 흥미로운 장치라고 생각했다.

43. 크레딧이 시작되기 전, 잠깐 쿠키영상이 나오는데, 재희가 흥수에게 소개팅할지 물어보는 장면이었다. 여기서의 대화도 너무 웃겼다.

"소개팅할래? 형사야."
"범인보다야 낫지."

Posted by 퍼포린
후기2022. 10. 13. 00:25
다큐멘터리 영화 &lt;성덕&gt; 포스터

수험생 시절, 친구들과 몰래몰래 보던 슈퍼스타K4는 큰 위로였다. 얼른 수시 합격하고 무대를 생방송으로 보고 싶단 마음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많은 무대 중에서도 단연 우리를 설레게 했던 건, 두 미남의 "먼지가 되어" 무대였다. 경쟁 무대였지만 완벽한 하모니였고, 둘 중 하나는 떨어져야 하는데 심사위원이 '슈퍼패스'를 사용해서 둘다 합격할 수 있었던 감동의 무대였다.

난 무사히 대학에 합격했고 날 빠져들게 했던 그 가수, 정준영의 첫 미니앨범이 나왔다. 슈퍼스타K4에 내가 덕질하던 가수가 출연하면서,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많이 친해졌고, 그 분이 소개시켜준 것인지 미니앨범의 크레딧엔 익숙한 이름들이 자주 보였다. 나는 그 미니앨범의 모든 곡을 사랑했다. 그 곡들에 담겨있던 설렘, 아픔, 반항심, 똘끼를 사랑했다. (지금은 버렸지만)앨범을 구매했고 듣고 또 들었다.

그랬었는데... 그는 몇년 뒤 성범죄자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덕후까진 아니었고, 라이트한 팬 정도였지만 그래도 배신감이 적지 않았다. 그와 친하게 지냈던 내 최애가 걱정되었다. 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은 그의 '성덕'이었다. 팬싸인회에 가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도 가수가 이름을 써주는. 다른 누군가의 덕후가 되어본 사람으로서, 내 삶과 인간관계가 그를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에 유독 기차 타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기차를 타고 최애를 만나러 가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마음아팠다.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얼마나 상실감이 컸을지. 연예인은 일반인인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지만서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만큼 범죄 사실이 밝혀졌을 때 더 비난 받게 되고, 더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먼지가 되어'와 함께 나타났던 그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슈퍼스타K4, '먼지가 되어' 캡쳐


감독님이 정준영의 팬이었다는 건 우연히 알고 봤어서 정준영 얘기가 나올 것이란 건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지만, 영화는 그 뿐 아니라 다른 성범죄자 연예인과 그 덕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영화 중반부에 또 나를 많이 위로했던, 하지만 성범죄자가 된 이의 덕후가 나와서, 깜짝 놀랐으면서도 참담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외국 생활을 할 때 외로웠던 내 마음을 많이 달래주었던 사람이 성범죄자라니.

어두운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영화 <성덕>은 최소 10분에 한번 빵터지는 장면이 있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술 없인 할 수 없는 얘기라며 요거트 막걸리를 만들어 마시자는 장면에서 터져버린 웃음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간접적인 피해자이자, 본인이 가해에 가담한 것은 아닐지 고민하는, 최애를 향한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성덕들을 위한 웃음치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여기서 이 사람이 나온다고?', '이 얘기를 이렇게 풀어간다니?' 하면서 웃기는 장면이 많아 등장인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영화라 이만 줄이겠다. 영화 내용은 극장에서 많이 확인해주셨으면 좋겠다.

<시놉시스>
10대 시절을 바쳤지만 스타에서 범죄로 추락한 오빠! 좋아해서 행복했고 좋아해서 고통받는 실패한 덕후들을 찾아 나선 X-성덕의 덕심 덕질기를 담은, 2022년 실패 없을 올해의 최애작!

Posted by 퍼포린
후기2022. 9. 4. 18:20

뒤늦게 써보는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1일 후기. 음악 얘기는 빼고.
1. 이동수단
지난 8월 6일 토요일,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있었던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수인분당선 배차간격이 극악이라 바로 환승하면 1시간 30분, 타이밍이 안 맞으면 2시간도 넘게 걸렸기 때문에 렌트카를 타고 가야하나 잠시 고민했었다. 하지만 주차 공간이 부족할 수 있고, 바닷바람과 모래에 차가 상할 수 있다는 주최측의 공지를 보았고, 락페에서 맥주 한잔은 마시고 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2. 짐
입장 전 소지품 검사가 있을 것이라고 해서 홈페이지에서 금지 물품을 잘 읽어보고 짐을 쌌다. 돌아다니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볍게 싸는 것도 포인트였다. 슬링백에 손수건과 보조배터리를 넣고, 350mL 짜리 보온병에 찬물을 담아갔다. 현장에서 줄서서 물 사먹는 시간과 돈이 아깝고, 쓰레기도 줄이기 위해 물을 챙긴건데 너무 더웠기 때문에 물 2병과 아이스크림 하나를 행사장 내에서 더 살 수밖에 없었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오래 서있으니 다리와 발바닥이 아팠다. 쿠션 없는 샌들을 신고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3. 마스크
발권과 입장이 오래 걸리진 않았으나 행사장 내부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고(누적 관객 13만명이라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도 엄청 많았다. 나만은 살아남으려고 더워도 마스크를 꼭꼭 썼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어서 락페를 다녀온 후 월요일까지 기침을 하거나 하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퇴근 후 집에 오는 길에 자가진단키트를 이용해보니 음성이라 맘이 놓였다.

4. 더위
오후 2시쯤 달빛축제공원에 도착해서 생맥 500cc를 마셨다. 오후 5시쯤이 되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몇년 전, 옥토버페스트에서 1000cc 맥주 두 잔을 마시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미식거리는 게 꼭 숙취같았다. 평소 주량을 생각해보면 500한잔 마셨다고 이럴 리가 없었는데.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면 꼭 가보려고 벼르고 있던 것이었다. 방학 땐 늘 뭔가를 하느라 시간이 없었던데다가 락 페스티벌 티켓값은 소득 없는 대학생에게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전파되기 시작했고 락페스티벌은 열리지 않았다. 로망으로만 남겨뒀던 락페스티벌이 드디어 열린다고 하자 당장 티켓팅을 했다. 슬램을 즐기며 뛰어놀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었다.
8월 초의 토요일은, 중간중간 물을 뿌려주긴 했으나 금방 말라버릴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컨테이너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무더위쉼터가 있었으나 그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거기서 좀 쉬었어야 했는데. 슬램을 기대했으나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었고 그냥 얌전히(?) 앞에서 놀았다.
공연을 볼 땐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는 긴장이 풀렸는지 머리가 너무너무 아팠다. 나의 모든 행동을 후회했다. 맥주를 마시지 말걸. 락페스티벌에 오지 말걸. 아니 그냥 집에서 나오지 말걸.
씻는걸 싫어하지만 입고 갔던 검은 티셔츠에 소금기가 보일 정도로 땀에 절어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에서 난 곧장 잠들었고 눈을 뜨니 다음날인 일요일 저녁 6시였다.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에 공연을 봤다면 월요일 출근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 다행히 더이상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내 인생 첫 더위먹음이었고 나는 생각보다 약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5. 추억미화
에어컨 아래서 자고 일어나니 마취에서 깨어난 것 마냥 안 좋은 기억은 싹 사라졌다. 괜히 갔다고 후회할 땐 언제고, 유튜브에서 직캠을 찾아봤다. 신나게 슬램하던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다시 갈 수 있을진 정말 모르겠지만, 9월이나 10월 날씨 좋을 때 하는 페스티벌이 있다면 가서 정말 신나게 놀고 오리라는 다짐을 했다.

끝.

Posted by 퍼포린
후기2021. 8. 12. 23:09

영화 <문영> 포스터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올 때, 왠지 이 영화를 꼭 다시 보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2017년 1월 개봉한 <문영>이 내게는 그런 영화였다. 2018년 넷플릭스를 처음 이용하게 되었을 때, 마법같이 <문영>이 메인에 떠있었다. 그렇지만 넷플릭스에 있으니 천천히 봐야겠다며 우물쭈물하던 사이, 넷플릭스에서 <문영>이 사라졌다ㅠㅠ

그렇게 2021년이 되어서야 <문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런 가족 영화(족가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가족은 화목하다는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사회에서, 현실 세계 어딘가에 숨어있는 불행을 조명하는 것은, 행복한 이들의 판타지를 깨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공감을 통한 위로를 준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선택하지 않은 혈연을 떠나 내가 선택한 인연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편견을 깨면서 말이다.

사족 : 김태리의 연기는 정말 놀랍다. 이 영화의 강렬함은 마지막 장면의 김태리로부터 오는 것이다.

 

Posted by 퍼포린
후기2021. 3. 10. 20:02

간담회 다시보기 : youtu.be/D0RJ0CeFQSo

 

지금 살고 있는 '방'을 구한 것이 작년 2월, 벌써 1년이 지난 일이다. 당시 방을 구하는 과정은 SPA 브랜드가 생기기 전의 청바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해외에서 수입된 SPA 브랜드에서 큰 사이즈의 청바지도 나오지만, 내가 10대였을 땐 그런 브랜드가 흔치 않았다. 옷을 사러 가면 항상 점원에게 가장 큰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실망하여 다른 매장으로 옮겨서 같은 대답을 듣는 것의 반복이었다. 뚱뚱한 내 몸이 창피했고, 점원이 나를 속으로 비웃고 있진 않을까 걱정했다.

전세를 구하면서는, 내가 가진 돈으로 만족스러운 집을 얻는 것이 불가능했다. 옷가게에서 점원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처럼, 중개인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걱정했다. '겨우 이 정도 돈밖에 없으면서, 깔끔하고, 넓고, 외풍이 없고, 바퀴가 나오지 않고, 반지하가 아닌 집을 원하고 있는 거야?'하고. 내가 가진 돈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

이런 부끄러움이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나보다. 간담회의 한 패널은 본인의 주거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거 환경의 열악함을 이야기 하는 게 부끄럽다고 하셨고, '방 말고 집에 살고 싶다'인터뷰에 참여하는 청년들도 쉽사리 본인의 주거 환경에 대해 입을 떼지 못한다고 한다. 주거 환경을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레 경제적 능력이 짐작되기 마련이니까.

간담회에서 가장 어이 없고 웃겼던 부분은 청년주택 셰어형에 비혼 이성 커플은 입주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동성이거나, 혈연 관계의 이성만 셰어형에 입주가 된다고. 만들어진 지 6개월밖에 안 된 청년주택이지만 '관례상'비혼 이성 커플은 살 수 없다고 했다. 입주예정자분이 서울시 청년주거정책과에 이러한 관례가 정책인지 문의했더니 공무원분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너무 웃겼다. '결혼하지 않은 이성 커플이 함께 사는 것을 국가가 지원해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대한민국에서는 혼인 신고를 해야만, 그 종이 쪼가리가 있어야만 정상가족으로 인정되어 섹슈얼리티 실천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말이라 웃겼다.

청년주거간담회에서 임대차 3법이 왜 악법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질의할 수 있었다. 작년부터, 세입자의 임대차계약 갱신 청구권이 생겼으며, 계약 갱신시 5% 이상 보증금을 인상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이 실행되었다. 세입자를 보호하려 만든 법안이지만, 내가 접한 매체들에서는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가 폭등하고, 매물이 없어 서민들이 고생한다는 내용만 볼 수 있었다.

사실 임대차 3법을 통해 원래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된 세입자는 전체의 70%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30%는 전세 신규 계약이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임대인들은 기존 계약 갱신시 보증금을 크게 상승시켜 목돈을 굴리는 게 불가능해졌으니 전세로 주던 집에 실입주 하게 되고, 게다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임대인들이 월세를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 전세 매물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신규 임대차 계약 실행시에는 보증금 인상 제한이 없어 결과적으로 전세는 폭등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임대차 3법은 악법이라서 서민을 괴롭히는 게 아니고, 임대인 눈치를 보느라 누더기 입법을 했기 때문에 서민을 괴롭히게 된 것이었다. 폐지가 아니라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자본주의의 끝이라 볼 수 있는 뉴욕에서도 보증금은 최대 1~2% 정도만 올리는 권고안을 지킨다는데. 우리나라는 정말로 있는 사람들의 탐욕을 지켜주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옷이 내 몸에 맞지 않는걸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내 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외모를 통제하기 위해 작은 사이즈로 나오는 옷이 잘못된 것이다. 방도 마찬가지다. 내가 돈이 없어 집다운 집이 아닌 좁은 방에 사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반지하가, 옥탑방이, 좁고 외풍이 드는 방이 존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공간을 주거용으로 허가한 정책이 잘못된 것이다. 몸을 옷에 맞출 게 아니라, 옷을 몸에 맞춰야 하는 것처럼, 구질구질한 방이 집 다운 집이 될 수 있게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집 다운 집에 살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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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2018. 5. 14.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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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연대기> 후기-①/영화의 주요 내용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단상들

<피의 연대기> 후기-②/생리대는 휴지와 같다


<피의 연대기> 후기-③/생리와 자본주의


<피의 연대기>를 보며, 너무 분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던 부분이 있었다. 저소득층 여학생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깔창을 생리대로 쓰거나, 생리 기간이 되면 수건을 깔고 누워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 다큐멘터리에 나왔다. 2016년에 여러 번 보도되었고,(기사) 이후 여러 복지 정책이 시행되고 기부 및 펀딩이 있었지만 여전히 생리대는 누군가에겐 비싸다. 나의 생리 경험과 영화를 곱씹어보면 돈이 없을수록 생리에 더 큰 돈을 들이거나, 더 불편해야만 하는 모순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생리대를 직접 사본 건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그 전까지는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서 생리대를 샀었으니까. 당시엔 소셜커머스에서 한 학기 정도 쓸 분량의 생리대를 한 번에 사서 썼었다. 그게 단가로 따졌을 때 가장 저렴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래서 생리대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셜커머스에서 사면, 생리대를 싸게 살 수 있는데 왜 생리대 가격을 인하해야 하는 걸까? 하고 엄마한테 물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 고등학생 때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니?"

그랬다. 소셜커머스에서 대량으로 생리대를 구매해 비용을 아낄 수 있었던 건, 대학생이 되어서 시간 여유가 늘었기 때문에 최저가 검색을 할 수 있고, 용돈이 늘어 한 번에 결제할 수 있는 금액이 커져서 가능한 거였다.


2년 전부터 나는 탐폰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산 탐폰을 썼고, 생리대를 쓰다 탐폰을 쓰니 완전 신세계였다. 냄새도 안나고 살이 짓무르는 일도 없었다. 생리혈이 새서 옷에 묻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다만 생리대보다 좀 더 자주 갈아야 하고, 소셜 커머스에서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없어서 돈이 더 들었다. 몇 달간 한국산 탐폰을 쓰다가 플레이텍스 탐폰이 훨씬 좋단 말에, 탐폰을 직구하기 시작했다. 원래 옛날엔 우리 나라에서도 플레이텍스 탐폰을 살 수 있었지만 몇 년 전에 철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탐폰을 거의 안쓰긴 하니까... 아무튼 아마존에서 플레이텍스 탐폰을 직구하면 아주 싼 가격에 많은 탐폰을 살 수 있었다. 다만 배송비가 비싸니까 많이 시켜야하는 단점이 있고.. 나는 한 번 살 때 5만원 정도를 사서 거의 1년 넘게 썼던 것 같다. 아무튼 플레이텍스 탐폰과 한국 탐폰의 편리함은 정말 천지차이였고 나는 절대로 고통스러운 한국 탐폰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생리컵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남은 탐폰을 이곳저곳에 나눠줬고, 나는 더이상 생리 때문에 돈을 쓰지 않는다. 나는 골든 컵을 찾기까지 10만원 정도를 소비했다. 보통 생리컵 하나가 4~5만원 가량인 것을 생각하면 두 번째 만에 적응한 것이니 시행착오를 많이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청소년이나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스러운 돈일 테고, 성인 중에도 해외 직구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생리컵을 이용해서 편리하고 저렴한 생리를 할 수 있는 것 역시 나의 특권이었던 것이다.


10대부터 50대까지, 여성들은 생리를 한다. 생리를 한다는 사실은 평등하지만 여성 개개인은 평등하지 않다. 자본 계급과 정보 접근성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생리 역시 자본주의적 계급에 따라 계급이 나뉘게 된다. 이런 부조리함이 나는 너무도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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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2018. 4. 2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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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연대기> 후기-①/영화의 주요 내용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단상들


<피의 연대기> 후기-②/생리대는 휴지와 같다


영화 <피의 연대기>에서 얻게 된 가장 큰 교훈(?)은 "생리대는 휴지와도 같다." 는 것이었다.

사실 영화를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ㅠㅠ)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공공화장실에 생리대를 모두 배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고 한다. 생리는 말 그대로 '생리 현상' 이니까 인간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생리대는 휴지와 같은 용도인 것이다.

14살에 초경을 한 뒤로 거의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대학원을 다닌다면 정말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을 기간 동안 생리를 하면서도, 생리대는 생필품이고 면세품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생리대가 휴지와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웬만큼 괜찮은 외부의 화장실에 가면 휴지가 비치되어 있다. 가정에서는 취향에 따라 휴지를 선택해서 구입해서 써야 하고, 학교나 회사 화장실 휴지가 맘에 안들면 개인 휴지를 휴대해 다니며 써도 되는 것이다. 생리대도 그래야 한다. 오히려 휴지보다 더 다급하게 필요해질 수 있는 게 생리대이다. 대·소변은 잠시 동안은 참을 수 있지만 생리는 참았다가 배출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생리대와 휴지를 똑같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피의 연대기>를 보며 얻은 가장 큰 인식의 전환인데, 센세이션을 글로 풀어내려 하니 어렵다. 요약하자면 생리대는 휴지와 같아서 공공 화장실에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생리대가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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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연대기> 후기-③/생리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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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2018. 4. 5. 22:12

<피의 연대기> 후기-①/영화의 주요 내용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단상들


이 영화는 지난 1월 18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16년인가 17년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것 같다는 기억이 있는데 그때 인기를 끌어서인지 이번에 정식으로 개봉하게 되었다. 그것도 상상마당 배급으로! 덕분에 영화가 개봉한지 몇 주 지난 2월 9일에 마침내 나는 <피의 연대기>를 보았다. 그러고 후기는 4월 초에 쓰고 있다... ㅎ 그치만 상상마당 배급이라 그런지 아직도 서울의 일부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다!! (네이버 영화정보) 많이 많이 보세요 여러분..


-영상미-

여타 독립영화와는 다르게, 피의 연대기는 고화질의 영상, 비비드한 색감을 만들어내어서 영화를 보며 상쾌함을 느꼈었다. 인터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배경으로 책이 가득한 책장이 나온다거나 해서 인터뷰이에 시선 집중이 안될 가능성이 있다면 배경을 자연스레 페이드 아웃한 것도 좋았다. 상쾌한 미감이 아니었더라도 재밌게 관람했을 영화였지만 영상미 덕에 더 기분좋게 영화 관람을 했었다.

영화 중간 부분에서 생리의 역사를 설명할 때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여성의 몸을, '전형적이지 않지만 실제적으로' 그려낸 것이 좋았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그림 작가의 느낌이 났는데, 크레딧에는 애니메이터 이름이 실명으로 나와서 그 작가분이 영화에 참여하신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자막에서 성(姓)을 빼다-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인물 이름 자막,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는 성을 제외한 이름만 표시가 되어 있다. 깨알같은 부분이지만 가부장제의 산물인 성씨를 빼버린 것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반영된 페미니즘적 가치관임이 느껴져서 좋았다.


-빅이슈-
상상마당에서 영화를 보고 홍익대학교 앞(홍대 앞 아님ㅋㅋ)으로 갔는데 빅이슈 판매원이 계셨다. 인스타그램 우주스타인 히끄고양이가 표지모델로 나오는 빅이슈 171호를 옛날부터 사고 싶었다. 빅이슈를 사들고 근처 카페에서 펼쳐봤는데, <피의 연대기>의 김보람 감독님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고양이와 김보람 감독님이 함께 실린 단돈 5천원의 잡지라니 정말로 데박데박이 아닐 수가 없다. 요즘 바빠서 아직 못 읽어봤지만... 일단 잡지를 사뒀으니 5월 쯤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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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연대기> 후기-③/생리와 자본주의

Posted by 퍼포린
후기2018. 1. 27. 01:04

영화 <1987>을 보면서 많은 감정들과 생각이 지나쳐 갔고, 그래서 꼭 후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벌써 영화 본지 2주가 지났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ㅎㅎ.. 그렇다고 해서 딱히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기에, 기억을 최대한 살려 후기를 남기려 한다. (스포有)


<1987>은 6월 민주 항쟁을 다룬 영화이다. 주입식 역사교육으로 인해 역사 공부를 극혐했던 나는(변명) 6월 항쟁을 포함한 민주화 운동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6월 항쟁에 대해 아는 거라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는 말도 안되는 말 정도였다.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거나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꺼리고, 영화를 보기 전 SNS에서 많이 접했던 비평이, 민주 항쟁에서 여성을 아예 지워버리고 알탕영화가 되어버린 이 영화를 보이콧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주로 자기 어머니의 운동 경험과 함께 말해졌다.) 그래서 영화를 볼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김태리가 멋진 운동권 언니로 나올 거니까 하는 기대와 덕심을 갖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따흐흑)


-웰메이드 영화, <1987>-

요즘의 한국 상업영화는 너무 뻔하다. 영화의 초반은 코미디적으로 구성해 웃음을 뽑아내고, 뭔가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서 긴장감을 일으키다가 마지막엔 감동과 따뜻함을 주어서 관객들을 엉엉 울게 하고 끝난다. 영화 하나로 극단적 감정기복을 구현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감정의 극단적인 흐름을 구성하기 위해 개연성 따위는 "영화니까." 라는 변명으로 가뿐히 무시해 버린다. 그래서 상업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관객들이 훌쩍이고 있으면, 난 왠지 시니컬해져서, 여기서 울면 작가와 감독의 뻔한 농간에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반면 <1987>에서는 이런 격정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톤으로 담담하게 팩션을 그려내고 있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는 메인 스토리가 있으면서도 다양한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민주화 투쟁을 하는 구성 역시 맘에 들었다.


한국 영화 특유의, "시끄러울 땐 빵!!! 대사는... 웅앵웅...쵸키포키..." 도 없었다. (사족 : 뽜ㅏㅇ!!!웅앵웅 쵸키포키.. 에 완벽히 부합하는 영화는 <군함도>였다. 엄청 시끄럽고 정신 없었는데 대사는 뭐라고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비록 김윤석 배우의 이북 사투리는 알아듣기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알아듣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받는걸까.


웰메이드 영화답게, 인위적인 감정의 과장은 없었지만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영화는 뜨거웠다. 특히 연희와 시민들이 각성을 하고, 문소리 배우의 목소리로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가 울려 퍼지는, <레 미제라블>의 오마쥬 부분에서는 뭉클함, 웅클함 정도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이 때,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오는데, 2017년에 오염되어버린 태극기라는 기표에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주기 위한 강력한 의도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태극기를 완전히 되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연희'라는 캐릭터의 서사에 대하여-

영화 <1987>에 대해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아쉬워하는 부분 중 하나는, 연희라는 캐릭터의 서사일 것이다. 나는 사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안 찾아보고 가서, 김태리 배우가 체크남방을 입고 짱돌 던지는 장면을 기대하고 영화관에 갔는데 정말로 경기도 오산이었다.


연희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수동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운동권을 싫어하고, 운동권 삼촌이 도움을 부탁할 때도 마지못해 나선다.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요?" 같은 염세적인 대사도 던진다. '멋진 운동권 오빠'의 희생을 통해 민주 시민으로 각성하는 부분은 이 서사의 정점이다.


물론 1987년 당시 이런 여성도 존재했겠지만 문제는 연희라는 캐릭터가 <1987>의 유일한 여성 주연이고, 어떠한 집합에서든 여성 개인은 과잉 대표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엑스트라를 포함한 기타 등장인물 중에서 애써 운동권 여성 주체를 찾아보는 착즙기-인간이 아닌 관객은, 민주화 투쟁 당시 남성만 고군분투하고 여성은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했을 것이란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한편, 연희에게는 로맨스 서사가 잠깐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한국의 관객들, 특히 이 영화의 주요 (타깃) 관객층인 운동권, 진보적인 청년, 힙스터 등은 수사하다가 연애하고, 환자 치료하다가 연애하고, 회사 일을 하다가 연애하고, 어쨌든 연애하고 연애하는 K-로맨스 서사에 염증이 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유일한 여성 주연이 운동권도 아닌데 로맨스까지 한다...! 그래도 나는 영화 전반과 조금은 다른 그림체로 묘사된 잠깐의 로맨스가 좋았다. 뜨겁고 암울하고 어두웠던 그 시기에도 24:7 투쟁모드가 아니라 사랑이 있고 일상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부족한 여성 서사-

이 영화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는 80년대 학번 대모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각오를 하고 영화를 봐서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알탕영화와 여성혐오적인 요소가 들어간 영화를 많이 봐서 역치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영화를 보면서 페미니즘적 착즙을 완료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셋 다인지 나는 이 영화가 그닥 불편하지 않았다. (착즙 : 민주 항쟁에 참여하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스치듯 등장한다. 한열과 연희를 숨겨 주는 신발가게 주인, 시위를 하다가 봉고에 태워져 어딘지 모르는 곳에 떨궈지는 여자들, 한열의 친구인 운동권 대학생,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들 등등..) 그냥 K-상업영화 답지 않게 완성도가 높고 담백하다는 생각을 하며 재미있게 보고 나왔다. ※그래도 벡델 테스트는 통과하지 못한다! 이름이 있는 여성 등장인물이 한 명밖에 없기 때문.※


GV에서 <1987>에 여성 서사가 부족하다는 질문에, 장준환 감독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만들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고, 많은 사람들의 어처구니를 빼앗았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저 대답이 어떤 의미였던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영화에 원톱 혹은 투톱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중심인물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모두 남성이므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을 때 남성 위주의 스토리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절한 설명이 없을 때 감독의 저 대답은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한 여성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나 설마 장준환 감독이 그런 의미로 말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글을 쓰면서 써치해보니 설마가 사람잡지 않았다. 이후 GV 직캠 영상)


여기까지가 영화를 본 직후에 들었던 생각이고, 지금은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30년 뒤에 <2017> 영화가 제작되었고 내가 그 때까지 살아서 그 영화를 봤는데, 이대생들이 등장하지 않고 군중들 사이로 무지개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면 조금은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여대 학생들의 행진 장면 떼샷이라도 3초정도 끼워넣었더라면 아쉬움이 조금은 덜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1987과 2017-

영화를 보며 머릿 속 생각의 가장 큰 비중은, 2017년 대한민국에서 또 한번 일어난 민주화 투쟁을 살짜기 겪은 경험과, 30년 전의 민주화 투쟁을 그린 영화를 비교하는 것이 차지하고 있었다. 1987년은 참 신기하고 모순적이었다. 허위 자백 또는 밀고를 받기 위해 고문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최루탄을 쏘고, 시위대와 전경은 육탄전을 벌인다.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반면, "법대로 합시다."를 외치는 검사가 있었다. 그 시대에도 민주적인 법이 있었다는 게, 비-민주적인 일이 공공연히 일어나는 현실과 모순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시대였던 걸까? 그러면 그 법은 언제 어디서 왔던 것일까?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할 수 있는, 공권력에 반대할 수 있는 시민의식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영화에 등장한 대학가의 분위기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만화동아리에서 5·18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학교 정문에 모여 시위를 진행한다. 지금 그랬다면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쟤네는 공부 안하고 뭐하냐', '왜 시끄럽게 하냐' 따위의 소리를 듣고 '만화동아리는 빨갱이 동아리다.' 같은 종북 몰이가 일어날텐데. 학교 앞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의 사진이 올라오면서 신상털이와 외모품평, 성희롱 등이 일어날텐데. 이런 분위기 변화는 우리 세대가 퇴보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 진보했기 때문일까?


나는 사회가, 그리고 대중이 항상 기득권의 입맛에 맞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최근의 촛불 시위도 모든 국정농단을 박근혜와 최서원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고 나머지 적폐들은 빠져나갈 수 있는 구실로 작용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영화 속에서는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자칫 잘못하면 고문을 당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시민들은 용기를 낸다. 택시 기사들이, 넥타이 부대가, 대학생들이 길을 막고 반-정부 행진을 하고, 투쟁은 승리로 끝난다. 대중을 움직인 힘이, 대중에 속해있는 수많은 개인의 정의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나도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지.


안타깝게도 1987년에 뜨거웠던 사람들 모두가 아직까지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고, 정부에서 내려온 보도지침을 과감히 무시하고 사건을 보도하는 장면은 21세기를 사는 나에겐 조금 낯선 장면이었다. 최루탄을 맞아가며 시위하던 사람들 중 완전히 꼰대 아재가 되어 기득권을 수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30년 뒤에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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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2017. 9. 9. 17:59

생리컵 후기-① / 레나컵 실패기생리컵 후기- 블라썸컵 성공기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6월 중순에 생리컵을 주문한 이후로 나는 6월과 7월, 두 번의 생리주기를 거쳤다. 그동안은 여름방학이었어서 나는 생리 기간 중에 생리컵을 착용한 채로 장시간 외출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생리컵이 다 차기 전에 집 화장실에서 생리컵을 비울 수 있었다.


8월의 어느 일요일, 또 생리가 시작되었고 난 '첫날이니 별로 생리양이 많지 않겠지...!' 하며 블라썸컵 스몰을 장착하고 오전 11시쯤 외출을 했다. 어쩌고 저쩌고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때쯤 상상마당시네마에서 하는 <꿈의 제인> GV에 갔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왔는데 그냥 집에 가기 아쉬워서 강남역 교보문고에 갔다. 생리컵을 착용하고 있었으니 생리중이란 사실을 까먹은 채로 뽈뽈거리며 교보문고를 돌아다니다 어느덧 저녁 8시 반이 되었다. 그 때 난 느꼈다. 뭔가가 다리 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것을... 생리컵이 다 찬 것이었다.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주르륵을 한 번 느낀 이후로 생리혈이 새는 것이 더 이상 느껴지진 않았지만 집까지 가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릴테고, 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어서 만일 일이 잘못된다면 길 한복판에서 공포영화를 찍는 일(과장임)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래서 교보문고 화장실에서 생리컵을 비우기로 했다. 밖에서 생리컵을 비울 일이 생길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나왔기 때문에 컵을 씻을 수 있는 물 같은 것이 없었다. 화장실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생리컵을 비우고 칸을 나와 세면대에서 생리컵을 씻고 바로 다시 칸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그냥 피가 꽉 찬 생리컵을 비우고 휴지로 대충 닦은 후 다시 착용했다. 그것이 비위생적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문제는 손에 피가 많이 묻었다는 것이었다. (생리컵을 쓰면 생리혈에서 악취가 나지 않아 손에 묻어도 더럽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손도 휴지로 대충 닦고 나가서 씻었다. 누가 볼까 걱정했지만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밖에서 생리컵을 비울 땐 생수 같은 걸 들고 들어가서 씻으면 된다던데 그것보단 물티슈가 있었다면 손과 생리컵을 편리하게 닦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무사히 생리컵을 비우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빨간 버스를 탔다. 앞으로는 생리 때 물티슈만 있다면 밖에서 생리컵을 비우는 것도 할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언덕을 넘었더니 드넓은 평지가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고 가방을 열었더니 그날 들고 나갔던 워터보틀에 먹다 남은 생수가 들어있는 것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