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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27 <82년생 김지영>
  2. 2017.06.22 참을 수 없는 페미니스트의 가벼움
에세이/책이야기2017. 6. 27. 02:00

<82년생 김지영>


세간의 화제(?)인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읽고 울었다는 후기들을 많이 봐서 나도 눈물줄줄 할까봐 자기 전 침대 위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읽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났다. 김지영 씨의 삶이 내가 살아온 삶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김지영 씨가 만난 여자들 중엔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쩌면 나의 삶보다 더 진보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지영 씨보다 열 댓 살은 어린데 말이다.


이내 막막해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김지영 씨의 삶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듯, 앞으로의 삶도 김지영 씨의 삶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지영 씨가 김지영 씨의 어머니와 별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듯, 김지영 씨의 딸도 김지영 씨와 별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시대속에서 애써 진보를 찾아보게 된다.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했던 김지영 씨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김지영 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뿐이다. 세대가 교체된 것에 비해 너무 작은 변화이지 않은가.


답답하고 부당하고 나를 분노케 했던 김지영 씨의 연대기를 들은 사람들도 그 부조리를 인지하나, 본인이 부조리에 가담하고 있으며 그것에 맞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현실이다. 세상은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여성은 해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해방되지 않으면 개인의 해방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으로 지정된 사람들은 모두 삶의 어느 순간에 부조리를 깨닫고 좌절하는 순간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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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17. 6. 22. 18:18

“나는 페미니스트” 선언하면서


불평등한 사회구조 바꾸는 일에


관심두지 않는다면 미사여구일뿐



<참을 수 없는 '페미니스트'의 가벼움> 이라는 칼럼을 보고 많은 비판이 오가는 것을 보았다. 이 글에 많은 위로를 받은 사람으로서 나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


엠마 왓슨이 UN에서 "성평등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은 페미니스트이며, 꼭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말하는 연설을 들으며 나는 여러모로 동의했었다. 사정이 있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더라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기에 충분하단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려운) 페미니즘 도서를 많이 읽지 않아도, 집회에 나가지 않아도, 주변의 여성혐오적인 지인과 말싸움을 해서 시원하게 이기지 못해도, 지금 뼈를 깎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더라도 선봉에서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심정적 지지를 보낸다면 나의 동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본인의 실천이 충분치 않다 생각해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걸 주저하지 않기를 바랐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허구적인 것이니까.



그런데 어디 가서 이런 말을 쉽사리 하고 다니진 못하겠다. 지금의 한국은 페미니즘 리부트를 맞았고 많은 사람들이 각성을 하고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데, 인터넷 세계를 일상적으로 들락거리다 보면 이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맞긴 한가 싶은 글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영페미 세대에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후에 페미니즘적인 말을 하는 게 유행이었다면, 요즘은 "나도 페미니스트지만..." 뒤에 반-페미니즘적인 말이 뒤따라온다.


"나는 페미니스트지만, 한남한남거리면 안된다고 생각해."

"나는 페미니스트인데,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주장하는거야.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메갈은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나는 페미니스트인데 메갈과 같이 묶이기 싫어. 걔넨 잘못된 페미니스트잖아. 메갈이 페미니즘을 퇴보시켰어."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여성들이 피해받는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성혐오자라 생각해."

"페미니즘은 옳은데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을 잘못 배운 애들이 트위터같은 곳에서 여성우월주의적인 말들을 하더라."


놀랍게도 이 모든 말들은 최근에 내가 한 여초커뮤니티에서 읽은 글과 댓글들의 내용이다. (절 오프라인에서 만나신다면 캡쳐본을 보여드릴 수 있답니다.) 여성일 가능성이 높은,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혹은 페미니즘을 지향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한다. 최근에 여혐별곡 대나무숲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아무말이 올라왔었다. 댓글에서 많은 분들이 한남충이라 욕했지만 글쎄, 나는 그 사람이 여성이거나 심지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말과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말은 그닥 다르지 않다. n명의 사람이 있으면 n개의 페미니즘이 있다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페미니스트가 맞을까?



이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좀 더 페미니즘을 많이 접하고, 공부를 많이 한다면 과격한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던 내가 과격하단 소리를 듣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듯이 그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과격함'에 주관적인 불쾌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가능하다. 문제는 이 불쾌함이 실천이 되어 안티-페미니즘의 논리를 답습하였으나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고, 페미니스트 진영에 들어가 기계적 평등을 강요하며 페미니즘의 물결을 막아버리는 사람들이다. 아마 이 '문제'들이 진화하면 에쿼티 페미니스트가 되어 한남들이 원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의 모델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진정한/올바른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스트로 불려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쩌면 또다른 의미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고민이 들던 차에 여성신문에 실린 이현재 교수의 칼럼을 읽었고, 이것은 나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사족 1. 여성신문 사이트에 이 칼럼이 저격하는 대상은 한국여성민우회, 워마드, 페미당당, 전국디바협회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렇게 전유되어버릴 때가 많다. 자주 있는 일이라 화낼 필요까진 없고 그냥 비웃고 지나가면 될 것 같다.


사족 2.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위에서 예시로 든 것과 같은 빻은 글이 올라오면 반박하는 댓글이 많이는 아니지만 달리긴 달리고, 그 반박글엔 좋아요가 꽤 눌린단 것이다. 아마 남초였으면 "너 메갈이니?" 하는 댓글들이 달렸을 것이다.

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