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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03 숨막히는 건강의 늪
에세이2021. 4. 3. 23:23

며칠 전 팟캐스트 '뇌부자들'에서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라는 책을 소개하는 걸 들었다.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흥미로운 내용인 듯했고 좋은 책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 문장에서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우리가 암에 걸린 사람을 비난하지 않듯, 정신병에 걸린 사람 역시 비난 받을 게 아니다." 라는 말.


지구상의 사람들은 정신병 혐오를 내면화하고 있다. '정신병'을 욕설로 쓰는 강한 혐오부터, '나는 상담이 필요한 정도까지는 아냐.' 하는 약한 혐오까지.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어서 정신과를 처음으로 방문하기까지 망설이는 시간이 아주 길었다. '내가 그정도로 아픈 것일까? 진단을 받고 나면 진단명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면서.


정신/심리 관련 매체에는 그런 말들이 자주 나온다. 정신의 병은 신체의 병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약하거나 의지가 없어 걸리는게 아니므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사회의 정신병 혐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 치료가 필요하지만 전문가를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으려면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아니, 절실하다. 하지만 "신체의 병과 같이 정신의 병도 비난할 일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아닌데. 신체의 병도 비난받던데.' 하며 실소하게 된다.


어디서 이런 말을 하고 다니진 못하지만, 아픈 사람들은 본인의 건강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특별한 계기를 말할 수가 없다. 건강 관리가 능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정말로 자연스럽게 체화되었다. 그래서 암에 걸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지 못한 거라며 나 자신을 질책했다. 독감이 유행할 때 건강관리 잘 하라는 말이 주변에서 자주 오가는 것을 보면, 남들도 나와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바이러스의 침투는 개체의 자의적인 노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임에도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다.


건강 관리도 능력이라는 말이 거짓말인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나를 포함한 우리 회사 사람들은 아플 때면 병가를 쓰는 게 아니라 연차휴가를 사용한다. 며칠 없는 연차휴가를 많이 소진해서 연차를 쓰기 힘들면 아파도 참고 꾸역꾸역 출근한다.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프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면서. 


정신의 병도, 신체의 병도 잘못한 일, 비난받을 일이 아니면 좋겠다. 그렇지만 코로나 백신을 맞고 면역반응으로 고생하는 간호사들조차도 쉬지 못하고 바로 출근하는 걸 보면, 우리에겐 정말로 아플 권리가 없는 듯하다. 이런 환경에서 정신의 병이 신체의 병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게 인식 개선의 효과가 있기나 할까 싶은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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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