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2018. 6. 13. 00:57

남자옷과 나


작년 추석 연휴 때였던가. 무시무시한 겨울 추위를 미리미리 대비하기 위해 나는 롯데 아울렛에 패딩을 사러 갔다. 디자인이고 뭐고 경기도의 강력한 추위를 버티게 해 줄 가볍고 따뜻한 옷을 사는 것을 목표로, 이런 저런 브랜드 매장을 지칠 때까지 돌아다녔다. 가격까지 저렴하면 금상첨화고.


여러 매장을 돌고 나서 나의 선택지를 이리저리 고민하고 비교하다가 노스페이스 매장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문 앞에 진열되어 있는 파란색 패딩을 발견했다!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으면서(후기) 태어나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샛파랑색이 나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에 감탄한 나는 주저없이 그 옷을 입어보았다. 한겨울에 패딩 안에 두꺼운 옷을 겹쳐 입어도 넉넉하도록, 평소 입는 것보다 두 사이즈 큰 옷으로. 파란 패딩을 입은 거울 속의 나는 굉장히 귀여웠고 따뜻해(더워)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패딩은 그 전까지 봤던, 살지 말지 고민하던 패딩의 1/3 가격이었고 새 옷을 사는 나도, 결제하는 엄마도 흡족하게 그 패딩을 사들고 매장을 나왔다. 매장 밖에서 엄마가 말했다.

"너 이제 남자 옷도 과감하게 입네"


그랬다. 주로 인터넷에서 옷을 사입기 전, 그러니까 웬만하면 엄마 손을 잡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사던 고등학생 때까지의 나는, 뚱뚱했어서 여성용으로 나온 옷은 제일 큰 사이즈조차 작았다. 그래서 인터넷의 빅사이즈 의류 쇼핑몰에서 구매한 옷이 아니면 여성용으로 나온 옷 말고, 더 큰 사이즈가 있는 남성용 옷을 입어야 했다. 그게 나의 뚱뚱함으로 인한 것이니까 너무 수치스러웠다. 옷가게에서 "손님 사이즈는 없어요."라거나 "남성 사이즈로 보셔야겠는데."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비참해졌었다. 여성성이 박탈된 것이라 느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일까? 티셔츠 같은 건 남자 옷과 여자옷이 차이가 별로 안난다지만 바지 지퍼와 셔츠 단추 방향이 다른 게 나는 너무도 신경쓰였다. 나는 평범한 여자애였어서 큰 사이즈 옷이 제작되지 않는 게 문제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타박했었다.


보통의 한국 여성들이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도 자신은 너무 살쪄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나는 정말로 객관적으로 뚱뚱했다. BMI 지수가 중도비만과 고도비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작년 여름의 엄격한 (혹독하진 않은) 다이어트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정상체중 범위에 진입하고, 66사이즈 여성복을 무리없이 입을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남자 옷을 입는 것이 수치스럽지 않았다. 그 당시 SNS에서는 남성용 옷이 같은 가격이라도 훨씬 질과 기능성이 좋단 말이 많이들 오갔었지만 그래도 내가 살찐 상태였다면 남성용 옷을 당당하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남자 옷을 입어도 수치스럽지 않았던 건 그것이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라는 건, 여러 가지 가능한 선택지 중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억압이나 어떠한 상황 때문에 제한된 선택지로 밀려나는 건 자유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남자 옷을 입는 건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이었다. 뚱뚱해서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사이즈에서 밀려나 남자 옷을 입어야만 했던 게 아니라, 나는 여자 옷도 남자 옷도 입을 수 이는데 그저 디자인, 기능, 가격이 맘에 들기 때문에 남자 옷을 선택한 거였으니까.


다이어트는 그런 점에서 정말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나는 다이어트를 해서 옷 사이즈를, 여성복과 남성복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나의 자유를 많이 포기해야 했다. 맛있는 음식, 자극적인 음식, 빵/떡/면을 먹을 자유를 포기하고, 빈둥거릴 자유를 포기하고, 바쁜 날에도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했다. 사실 나는 면요리와 떡볶이를 좋아하고,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고, 시간이 남을 땐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데도.


페미니즘을 접하고, 몸을 옷에 맞추는 게 아니라 옷을 몸에 맞추는 게 맞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 의류회사들이 정신을 차려 큰 사이즈 옷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예쁜옷, 여성용으로 나온 옷을 맘 놓고 입고 싶었다. 방학이 지나 복학을 하고,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엄격한 다이어트를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 시장의 소비자가 되기로 결정했었다. 분명 미의 이데올로기에 부역하는 것이자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었다. 나의 다이어트는, 여성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사회와 타협하려고 스스로의 욕망을 참아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유를 포기해서 자유를 얻었다.  내가 얻은 자유가 '진짜' 자유일까?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18. 4. 27. 00:45

체벌 거부 선언



제 1부. 과거의 기억


1. 언쟁

대학교 새내기 시절의 일이었다. 꽤 시간이 지난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체벌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동기와 언쟁을 했다. 그는 자기가 ‘똑바로’ 큰 건 다 모부님의 엄한 매질 덕분이라며, 자식을 키울 때 체벌은 필수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폭력을 쓸 수 있냐고 다시 묻자, “너는 맞고 살지 않아서 잘 모르나보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렇게 언쟁은 종결되었다.


2. 반증

그의 말이 틀렸다는 대답을 하지 못했던 건 무엇보다도 나의 모부를 욕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조숙했던 10년 전의 나는 앞에서는 맘에 없는 말로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뒤에서는 맘에 들지 않는 지시를 따르지 않는, 반항아와는 거리가 먼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부님을 사랑했고, 다른 어른들을 대할 때처럼 그들을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면 난 많이 맞았다. 그들이 나를 때리는 것은 훈육이지만 내가 때리는 것은 패륜이기 때문에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마다 ‘감정 조절을 하는 능력은 내가 이겼다. 저 사람들은 참 한심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맞고 있었다. 그래서 맞고 살지 않아서 체벌을 반대하는구나 했던 동기의 말에 나도 많이 맞았다는 말로 반박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정에서의 체벌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 모부의 폭력성과 무능함을 전시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제 2부. 체벌과 훈육


1. 양육자로서의 권위

나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타자를 억압 혹은 통제하는 것이 권위라고 정의한다. 상대의 의사에 반한 권위 행사는 대부분의 경우 옳지 않고,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양육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권위가 필요할 때가 있다. 피양육자가 거부하는 것이 피양육자에게 필수적인 일인 경우에는 양육자의 권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권위’라는 부정적인 개념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최근의 내 경험이 모순 해소의 고리가 되었으면 한다. 일주일 전에, 나와 동거하는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서 실수를 했다. 발이 미끄러졌는지 그는 한동안 한쪽 발을 짚지 못하고 절뚝거리며 걸어다녔다. 발톱을 깎다가 내가 실수를 해서 피가 났을 때조차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표정을 짓는 고양이가 그렇게 아픈 티를 낼 정도이니 반드시 동물 병원에 가야했다. 하지만 영역동물인 고양이가 제 발로 병원에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강자로서의 권위를 이용해 그의 신체적 자유를 억압하여 병원에 데려가야만 했다. 고양이와 동물 병원에 가는 것은 양육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피양육자가 싫어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므로 일종의 권위 행사이기도 하다. 만약 같은 상황에서 의사 소통이 가능한 인간 아이를 양육하는 상황이었다면 먼저 대화를 시도했겠지만, 설득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양육자로서의 권위를 행사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양육자로서의 ‘권위’이다. 나에게 이 오염된 단어를 대체할 새로운 언어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2. 체벌의 불필요성

시간이 흘렀고, 나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함으로써 피훈육자로만 살아오다가 훈육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 개인으로서의 내가 체벌 가해를 기피한다는 것을 차치하고, 당시의 경험은 체벌의 필요성에 대해 품던 의심을 체벌의 불필요성에 대한 확신으로 변하게 한 계기였다.


내가 상대했던 학생들은 초·중학생이었고 당연히, 내 말을 잘 따르지 않을 때도 많았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의 말에 일방적으로 복종 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이니까. 그렇지만 제한적인 시간 동안 효율적인 학습 성취도를 이끌어내야 했던 학원 시스템 안에서 학부모가 기대하는 강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교육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시간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교재를 소리내서 읽게 해야 했었다. 한 학생이 “하기 싫어요.”를 반복하며 나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어서 나는 정색을 하며 낮고,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빨리 읽어.” 라고 말했다. 그 학생은 다소 겁을 먹은 표정을 하며 교재를 읽기 시작했다.


그 때 깨달았다. 나와 그 학생의 관계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 신체적 능력이 우위에 있는 사람과 약한 사람의 관계이므로 내가 무해함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하는 것이 학생에겐 크게 다가온다는 것을. 통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굳이 타인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빼앗는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훈육자로서의 권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3. 체벌은 폭력이 아니라 훈육이다?

제 1부에서 언급했던 언쟁 이후,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2. 반증의 내용을 간략히 올렸었다. 그 게시글에 달린 댓글의 대부분은 “체벌은 폭력이 아니라 훈육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다. 먼저, 체벌은 타인의 신체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폭력이 아닐 수가 없다. 둘째, 체벌이 훈육의 효과가 있는지도 불분명할 뿐더러 2. 체벌의 불필요성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체벌을 하지 않아도 훈육이 가능하다. 오히려 제 1부에서 알 수 있듯 체벌은 양육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셋째, 훈육을 목적으로 체벌을 하는 것은 피훈육자에게 ‘맞을 짓을 하면 맞아도 싸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결국 폭력이 대물림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아마 내 또래들도 폭력을 정당화하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제 3부. 가해 거부 선언


나는 모부와 물리적으로 독립한 상태이며, 곧 경제적 독립을 이룬다. 따라서 현재의 나는 체벌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앞으로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태이다. 비청소년이자 비당사자의 위치에서 아수나로의 체벌 거부 공동행동에 참여하며 다음과 같은 선언을 남긴다.


        1. 나는 체벌을 하지 않을 것이다.

        2. 나는 체벌을 강요하는 구조를 거부한다.

        3. 나는 체벌 거부 운동을 포함한 청소년 인권운동에 연대한다.



2018년 4월

퍼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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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17. 11. 7. 11:25

'한샘'이라는 기업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으로 온라인이 시끌시끌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샘'을 욕하고 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큰 회의를 느낀다.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 되었을 때, 앞으로의 인생에 정말로 답이 없는 사람들은 피해자에게서 사건의 원인을 찾고, 그나마 상식적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해자가 '개새끼'라며 가해자를 욕한다. 분노에 차 가해자를 욕하는 사람 중엔 남성도 많다. 그런데 나는 '한샘'이라는 기업에 분노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불편하다.


'한샘' 성폭력 사건이 처음으로 공론화 되었던 네이트 판 게시글의 댓글에서 "원래 사무직은 성희롱이 심하다"는 식의 말을 보았다. 뭔 개소린가 싶지만 이건 사실이다. 다만, 성희롱이 심한 건 사무직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 사회에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여성혐오가 심하기 때문에 사무직 여직원들에게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폭력 문제는 '한샘'이 원인이 아니라 '강간 문화' 가 원인이다. 가해자는 '개새끼' 도, '사이코패스'도, '괴물'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국 남성(줄여서 쓰면 큰일남) 이다. 다른 기업도 쉬쉬할 뿐 직장내 성폭력이 빈번할 것이고 '한샘'에 취직하지 않는다고 성희롱을 당하지 않는 게 아니다.


'한샘'이 직원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며 욕하는 남자들을 보며 나는 궁금해진다. 그 남자들 중 강간 문화를 조장하는 데 일조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학창 시절에 여학생에게 성희롱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남학생이 성희롱적 발언을 하는 걸 보며 방관하지 않고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이 있을까? 남톡방에서, 술자리에서 다른 여자들을 안주삼아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던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를 시청하지 않아본 사람이 있을까? 저렇게 분노하는 사람들 중에 '한샘'을 욕할 자격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애꿎은 사람을 모욕하는 것보다는 '한샘'을 '개새끼'라며 욕하는 현상이 좀 더 바람직한 것은 맞다. 그렇지만 성폭력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샘'도, '가해자'도 아닌 '강간 문화' 이다. 나는 자신들도 성폭력 가해자와 별 다를 거 없는 인간이면서 스스로의 선량함을 전시하기 위해 성폭력 가해자를 욕하는 걸 보고 있는 게 불쾌하다. 죄 없는 사람만 돌을 던졌으면 좋겠다. 자기들 주제도 모르고 돌을 던지는 건 참 꼴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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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17. 9. 16. 20:16

릴리안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검출된 것 때문에 온라인도, 오프라인도 시끌시끌하다. 몰랐는데 주변에 릴리안 생리대를 쓰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생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터부시되기 때문에 누가 무슨 생리대를 쓰고 있는지 알 기회가 없다가, 이번 일로 생리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릴리안 생리대를 쓰는 사람이 많았던 건, 릴리안 생리대가 비교적 저렴한 생리대였고 할인, 증정 행사를 많이 했기 때문도 있었겠지만 '순수한 면' 이라는 브랜드명이 소비자들에게 '안전함'과 '깨끗함' 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몸이 가장 민감할 시기에 내 몸에 직접적으로 닿아야 하는 제품이니 합성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리대보는 순면을 쓰는 게 더 좋을 테니까. "내 몸을 위한 100% 순면커버"라고 하니까.


최근 발표된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교수의 실험 결과를 보면서, 많은 여성들은 도대체 어떤 생리대를 써야 하는 것일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생리대에서 독성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하고, 시험을 하지 않은 생리대도 안전함을 담보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생리를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는 플레이텍스 탐폰을 약 1년간 쓰다가 몇 개월 전 생리컵에 완벽히 적응을 해서, 이런 걱정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화가 났다. 체온과 같은 온도의 항온 챔버에 생리대를 넣고 방치해서 휘발성유기화합물 농도를 측정하는 기본적인 실험 없이 생리대가 시판될 수 있었다는 것에 화가 났고, 그런 생리대를 내가 몇 년간 써왔던 것에 화가 났다. 심지어, 나는 좋은 품질의 생리대를 저렴하게 구입하는 현명한 소비자라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스무 살 때 생리량이 줄어들었음을 인지했던 것 같다. 중고등학생 땐 생리대를 하면 피가 새서 바지에 묻고, 오버나이트를 해도 피가 새서 이불에 묻고 그랬으니까.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 피부가 짓물러서 이런 저런 생리대를 바꿔가며 써보다가 정착한 게 순수한 면 생리대였다. 생리대외의 선택지는 없었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순수한 면 생리대를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중형 생리대를 하고 침대에 누워도 괜찮을 정도로 생리량이 줄었다. 나이를 먹으면 자궁 내벽의 두께가 줄어들어 생리량도 줄어든다길래 그런 건줄 알았다. 그렇지만 생리대를 탈수해서 생리량을 측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런 피해를 어떻게 공론화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생리대 피해사실이 과거엔 없다가 릴리안 보도 이후로 늘어났단 식으로 비꼬는 뉴스(생리대 부작용 신고 보름새 74건…위해성 논란 전에는 '0건')를 봤는데, 사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생리는 여성의 일, 그래서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로 과소평가 되고, 부끄럽고 감춰야 할 일이라 많은 여성이 신체적 변화를 겪었어도 그 경험은 공론장에서 나눠지지 않는다. '다른 여성도 똑같이 겪는 피해 사실'이 아니라 '내 몸이 조금 이상한 것'이 된다. 게다가 '위생용품' 이라고 불리는 생리대에 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기본적인 시험도 없이 시판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많은 여성이 이번 일을 계기로 일회용 생리대 사용을 멈추고 직구한 탐폰 또는 생리컵을 사용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독성 물질도 독성 물질이지만 생리혈이 체외로 배출되지 않으면 정말 편하고 좋으니까. 그렇지만 질에 무언가를 삽입하는 일은 여전히 한국 여성들에게 "무서운 일" 이다. 슬프다.

Posted by 퍼포린
에세이/책이야기2017. 8. 11. 02:14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주의가 여성을 해방시키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이 자본주의하고 양립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다. 실제로 파이어스톤은 '페미니즘적 사회주의'를 요구했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급진 페미니즘이 신참 여성들에게 다른 형태의 사회적 지배에 관해서도 정치적으로 교육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윌리스가 지적하듯 급진 페미니즘은 신참자들에게 여성으로서 당하는 억압을 인식하 게 했지만 그 여성들을 자동으로 '전반적 사회 변혁에 헌신하는' 급진주의자로 변신시키지는 못했다. 파이어스톤 같은 여성들은 이 신참 여성들의 일부가 페미니즘을 자기 계발의 이데올로기로 움켜쥐는 모습을 보면서 환멸을 느꼈다.


앨리스 에콜스, 「나쁜 여자 전성시대」 , <4장. 급진 페미니즘의 갈래들 : 레드스타킹스, 셀16, '페미니스트들', 뉴욕급진페미니스트>,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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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책이야기2017. 6. 27. 02:00

<82년생 김지영>


세간의 화제(?)인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읽고 울었다는 후기들을 많이 봐서 나도 눈물줄줄 할까봐 자기 전 침대 위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읽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났다. 김지영 씨의 삶이 내가 살아온 삶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김지영 씨가 만난 여자들 중엔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쩌면 나의 삶보다 더 진보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지영 씨보다 열 댓 살은 어린데 말이다.


이내 막막해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 김지영 씨의 삶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듯, 앞으로의 삶도 김지영 씨의 삶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지영 씨가 김지영 씨의 어머니와 별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듯, 김지영 씨의 딸도 김지영 씨와 별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시대속에서 애써 진보를 찾아보게 된다.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했던 김지영 씨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김지영 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뿐이다. 세대가 교체된 것에 비해 너무 작은 변화이지 않은가.


답답하고 부당하고 나를 분노케 했던 김지영 씨의 연대기를 들은 사람들도 그 부조리를 인지하나, 본인이 부조리에 가담하고 있으며 그것에 맞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이 현실이다. 세상은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여성은 해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해방되지 않으면 개인의 해방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으로 지정된 사람들은 모두 삶의 어느 순간에 부조리를 깨닫고 좌절하는 순간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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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여의도의 많은 사람들이 영남 사투리를 구사하는 게 계속해서 전파를 타면서 트위터에서 영남/호남 사투리에 관련된 논의가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논의를 다 따라가지도 못했고 어디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이야기를 풀어놓고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남지역에 살다가 졸업 후에 경기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경기도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도에 살기 시작한지 2년 째에 사투리를 ‘고치게’ 되었다.


새터에서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경상도 출신 선배들을 보며 ‘나는 의리있게! 계속 사투리를 써야지’ 하고 생각했고, 실제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말투를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 학교의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영남 출신이었고 사투리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그들 사이에서 나 역시 사투리를 쓰는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들 전라도 사투리는 쉽게 고칠 수 있어도 경상도 사투리는 고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나는 서울말을 연습하게 되었다. 영남패권주의라든지, 서울중심주의라든지 하는 권력관계에 관한 고민과는 관련 없는, 정말로 단순한 계기 때문이었다.(궁금한 사람은 얼굴 보고 물어보면 말해드림 아무도 궁금해하진 않겠지만…)


수도권에 살면서 사투리가 아닌, 서울말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편했다. 예전엔 옷가게, 식당, 백화점 같은 곳에서 일하는, 처음 만난 사람들까지도 꼭 내 고향을 물어보곤 했는데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내가 말을 하면 따라하면서 놀리거나 사투리를 고치는 것이 어렵냐며 서울말을 써보라고 하는 사람들도 없어졌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자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서울남자들이 좋아한다며 대상화되는 일도 없어졌다.(어쩌면 낯선 지방에 사는, 어수룩한,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투리를 쓰는 게 귀엽게 받아들여지는 게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고향을 물어봐서 수원 출신이라 대답해도 내 말투 때문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없어질 때쯤, 나는 내 고향인 경남 지역에 비해 서울, 경기지역이 훨씬 진보적이고 선진적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내 고향을 밝히는 것을 창피해하게 되었다. (많은 풍파가 있었을지라도) 전국 대부분의 시,도에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될 때, 경남에서는 조례 발의 후에 통과는 커녕 이슈조차 되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아무도 학생인권운동에 관심이 없었고, 관심이 있는 학우는 '학생인권'이라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아침 조회 시간에 지각을 하면 줄서서 종아리를 맞았는데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동갑내기 친구는 자기 학교에선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수도권과 영남 지방의 색은 크게 차이가 났다. 작년 연말, 서울 사람들은 가족 단위로 집회에 나가고, 수도권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집회에 다녀온 우리들에게 박수를 쳐줬는데 내 고향의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시끄러운 시위대를 욕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내 고향이 부끄러웠고, 지역 이름으로 라벨링되고 싶지 않았다. 누가 출신지를 물어보면 수원 출신이라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수원에서 지낼 때 가장 편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과거의 어느 날에 서울에서 있었던 어떤 행사에 참여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발언하는 사람들 중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투리를 쓰는 타자의 존재를 축소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서울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서울에 첫눈이 와야 한국에 첫눈이 온 것이고, 랜선친구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산다고 가정한다. SNS에서 맛집이나 강연 소식을 보면 당연히 서울일 것이라 생각된다. 나의 출신지가 (차별받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자화되는 지역임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 사는 내가 영남 사투리를 고수하는 것도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내가 요즘 다시 사투리를 쓸까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짧은 인생의 대부분을 사투리를 구사하며 보냈다. 표준어로 말하기 위해서 나는 마치 외국어를 쓸 때처럼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어쩌면 이게 더 바람직한 언어사용 습관인걸까…) 그래서일까 고등학교 때까지 만난 친구들에게 나는 막말을 서슴없이 하고, 욕을 잘 하고, 어딘가 모자란 친구인데 대학에 와서 만난 친구들은 내가 화나는 일이 있어 욕을 내뱉으면 깜짝깜짝 놀라더라.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와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성실히 공부하고 알아서 할 일 잘 하는 사람인걸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내가 느낀 바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떤 종류의 한국말을 내뱉으며 살아야 하는걸까? 익숙하지만 불편한? 낯설지만 편한? 사투리를 계속 쓸지 고민할 수 있는 것도 내가 호남 출신이 아니라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고민인걸까?

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17. 6. 22. 18:18

“나는 페미니스트” 선언하면서


불평등한 사회구조 바꾸는 일에


관심두지 않는다면 미사여구일뿐



<참을 수 없는 '페미니스트'의 가벼움> 이라는 칼럼을 보고 많은 비판이 오가는 것을 보았다. 이 글에 많은 위로를 받은 사람으로서 나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


엠마 왓슨이 UN에서 "성평등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은 페미니스트이며, 꼭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말하는 연설을 들으며 나는 여러모로 동의했었다. 사정이 있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더라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기에 충분하단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려운) 페미니즘 도서를 많이 읽지 않아도, 집회에 나가지 않아도, 주변의 여성혐오적인 지인과 말싸움을 해서 시원하게 이기지 못해도, 지금 뼈를 깎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더라도 선봉에서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심정적 지지를 보낸다면 나의 동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본인의 실천이 충분치 않다 생각해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걸 주저하지 않기를 바랐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허구적인 것이니까.



그런데 어디 가서 이런 말을 쉽사리 하고 다니진 못하겠다. 지금의 한국은 페미니즘 리부트를 맞았고 많은 사람들이 각성을 하고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데, 인터넷 세계를 일상적으로 들락거리다 보면 이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맞긴 한가 싶은 글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영페미 세대에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후에 페미니즘적인 말을 하는 게 유행이었다면, 요즘은 "나도 페미니스트지만..." 뒤에 반-페미니즘적인 말이 뒤따라온다.


"나는 페미니스트지만, 한남한남거리면 안된다고 생각해."

"나는 페미니스트인데,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주장하는거야.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메갈은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나는 페미니스트인데 메갈과 같이 묶이기 싫어. 걔넨 잘못된 페미니스트잖아. 메갈이 페미니즘을 퇴보시켰어."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여성들이 피해받는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성혐오자라 생각해."

"페미니즘은 옳은데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을 잘못 배운 애들이 트위터같은 곳에서 여성우월주의적인 말들을 하더라."


놀랍게도 이 모든 말들은 최근에 내가 한 여초커뮤니티에서 읽은 글과 댓글들의 내용이다. (절 오프라인에서 만나신다면 캡쳐본을 보여드릴 수 있답니다.) 여성일 가능성이 높은,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혹은 페미니즘을 지향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한다. 최근에 여혐별곡 대나무숲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아무말이 올라왔었다. 댓글에서 많은 분들이 한남충이라 욕했지만 글쎄, 나는 그 사람이 여성이거나 심지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말과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말은 그닥 다르지 않다. n명의 사람이 있으면 n개의 페미니즘이 있다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페미니스트가 맞을까?



이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좀 더 페미니즘을 많이 접하고, 공부를 많이 한다면 과격한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던 내가 과격하단 소리를 듣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듯이 그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과격함'에 주관적인 불쾌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가능하다. 문제는 이 불쾌함이 실천이 되어 안티-페미니즘의 논리를 답습하였으나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고, 페미니스트 진영에 들어가 기계적 평등을 강요하며 페미니즘의 물결을 막아버리는 사람들이다. 아마 이 '문제'들이 진화하면 에쿼티 페미니스트가 되어 한남들이 원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의 모델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진정한/올바른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스트로 불려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쩌면 또다른 의미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고민이 들던 차에 여성신문에 실린 이현재 교수의 칼럼을 읽었고, 이것은 나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사족 1. 여성신문 사이트에 이 칼럼이 저격하는 대상은 한국여성민우회, 워마드, 페미당당, 전국디바협회라는 댓글이 달렸다...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렇게 전유되어버릴 때가 많다. 자주 있는 일이라 화낼 필요까진 없고 그냥 비웃고 지나가면 될 것 같다.


사족 2.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위에서 예시로 든 것과 같은 빻은 글이 올라오면 반박하는 댓글이 많이는 아니지만 달리긴 달리고, 그 반박글엔 좋아요가 꽤 눌린단 것이다. 아마 남초였으면 "너 메갈이니?" 하는 댓글들이 달렸을 것이다.

Posted by 퍼포린
에세이/책이야기2017. 6. 16. 20:51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7장 중 1장을 읽었으니 읽기 시작했다고 해야하나.

1장까지 읽고 나는 감탄했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화자는 생리를 시작하는데, 그 부분을 어떠한 판타지적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실 남성 소설가의 글을 읽어보면 여성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실제 여성이 아니라 본인의 환상 속 여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이 싫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소설을 읽기 전 작가의 사진을 먼저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여성 작가가 썼을 거라 짐작했을 것 같다. 


"입국 심사대 앞에 서 있을 때 생리가 터졌어. 줄 선 시간이 아까워서 화장실에 갈까 말까 조금 망설였는데, 사실 망설일 상황이 아니었어. 생굴 같은 게 막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어. 화장실에 가서 봤더니 팬티에 이미 피가 꽤 묻어 있는 거 있지. 가방에 생리대가 하나 있기는 했는데 여벌 속옷은 당연히 없었지. 화장실에 있는 휴지로 최대한 피를 닦아내고 팬티에 생리대를 붙였어. 달리 방도가 없잖아."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 12쪽

이 부분에서 나는 김훈 작가의 <언니의 폐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불가피했다,...

그래 이게 여성이지. 이게 생리지.
아직 1장밖에 안 읽어봤지만 남은 부분들도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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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2017. 6. 13. 23:27

언니란 단어에 대하여.



나는 언니란 단어가 싫었다. 정확히는 '언니' 란 단어로 호칭되는 게 싫었다. '언니'는 손윗사람인 여자를 부르는, 나이주의와 성별이분법에 기반한 호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니'로 불리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 사이에는 자연스레 나이권력에 따른 위계가 생긴다. 평등한 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개인간의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서로 이름을 부를 때와는 달라지게 된다. '언니'란 호칭을 정하는 과정에 반드시 서로의 나이를 알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내 나이를 밝히는 순간 어린애가 되어 상대방보다 낮은 위계에 있게 되고, 발화권력이 없어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 과정을 내가 겪는 것도 싫었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언니'라는 호칭이 싫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 호칭이 멸칭화 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뭐라 해야할까.... 몇 년 전 꽤 오랫동안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호칭이 '언니'였던 것 같다. 그 때 난 스무 살이었는데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다들 날 '언니'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 또는 중년의 여성들이었지만 가끔 나를 '언니'라 부르는 중년의 남성들도 있었다. 언니란 단어는 여성이 연장자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일종의 컬쳐쇼크를 받고 '아 이것이 경기도의 문화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알고보니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은 대부분 언니로 불리고, 심지어 직업 호칭을 부를 수 있는 경우에도 존중의 의미를 소거한 호칭을 쓰고 싶은 경우엔 언니라고 불리더라. 성매매 업소의 성판매자들도 종종 '언니'로 불린다. ('언니들 상시대기' 같은 스팸을 본 적 없진 않을 것이다.) '아줌마', '아가씨'만큼 멸칭화 되진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언니'란 단어도 그 정도의 멸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같은 단어라도, 다른 사람이 쓰면 청자인 내가 받게 되는 느낌이 다르단 걸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접촉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요즘은 '야성의 꽃다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는데, 그 팟캐스트에서는 청취자를 '언니'라고 부르고 방송을 끝낼 때 "언니들, 안녕히." 하고 인사를 한다. 그 끝인사가 어찌나 따뜻하게 들리던지. "우리는 서로의 언니, 서로의 힘, 서로의 용기가 되어줄 거야." 라는 뒷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이대 농성 당시 졸업생들이 들고 왔던 "언니 왔다." 피켓도 믿음직한 언니들이 있다는 든든한 느낌을 주었지.(나는 이대생이 아님에도.) 인터넷의 많은 여초 커뮤니티 회원들이 부르는 '언니'는 친근하고 다정했지.


여성을 지칭하는 호칭은 어떤 호칭이든 멸칭이 된다. 원래부터 비하의 의미였는지 존경의 의미였는지와는 상관없이.(아가씨, 마누라, 여사, ...) 언니라는 단어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원래 비하의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 단어였고, 최근에 나는 그 단어가 여성 연대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단어로 쓰일 가능성을 보았다. 그렇다면 멸칭이 되었다고 해서 그 단어를 폐기하는 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이 긍정적인 의미로 열심히 써서 단어를 되찾아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사족 : 이 글을 쓰면서 '언니'의 어원을 찾아봤는데 이 단어는 20세기 초반에 우리말 문헌에 처음 등장하고, 일본어의 아니(兄)에서 변형된 것이란 추측이 있다.

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