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그만둔 이유
작년 9월쯤이었던가. 나는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감자튀김이 맛이 없었다. 그때 난 다이어트를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먹는 걸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날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 2차 성징을 겪으며 보통 체형 정도가 되긴 했지만, 그때도 나는 스스로가 살쪘다 생각했었고, 그 잠깐의 뚱뚱하지 않았던 순간조차도 고입 대비와 끊임없는 야식 때문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렇지만 맘 편히 먹는 것은 어려웠다. 가족과 식사를 할 땐 엄마가 그만 먹으라 하고 오빠새끼가 뚱뚱하다 놀린대도 마음 편히 먹었지만, 급식을 먹을 땐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이 먹는 게, 내가 뚱뚱한 원인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것 같아서 애써 식욕을 참고 먹을 것을 남기곤 했다. 아무래도 급식은 식판에 1인분 정량을 배식받으니 먹는 양이 정확히 비교되어 괜히 마음이 더 불편했던 것 같다.
몸을 망치는 다이어트 이후 나는 헬스장에서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았다. 그때 트레이너에게 식단 조절 방법을 배웠다. 다이어트식은 탄수화물(밥, 고구마 등)+단백질(고기, 두부, 생선, 달걀)+야채 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PT를 받으며 나는 내가 먹는 모든 것을 사진 찍어 그때그때 트레이너에게 카톡으로 보내야 했다. 2개월 뒤, 나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어 잠시 다이어트를 쉬었다. 쉬는 기간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었다.
작년 여름방학 때, 딱히 뾰족한 계기는 없었지만 나는 다시 한번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 사 먹는 것 이외의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그 외엔 집에서 닭가슴살과 야채, 현미밥을 먹었다. 나는 야채 종류, 특히 토마토, 파프리카 같은 걸 싫어해서 그나마 먹을 만한 야채는 양상추, 양배추, 상추 정도였다. (PT를 받을 당시 트레이너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굳이 토마토 같은 걸 먹을 필요는 없다고 했었다) 거기다 드레싱을 잔뜩 뿌려 먹었다. 그래야 먹을 만하니까. 이 정도도 못 하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나 자신을 혹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끼니 시간 즈음 이외엔 배가 고프진 않았다. 굶지 않고 잘 챙겨 먹었으니까. 엄격하지만 혹독하진 않았다. 69kg이 되면 두끼떡볶이에 가서 떡볶이를 잔뜩 먹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내 자제력이 얼마나 놀라웠냐면, 작년 8월 한국여성학회 캠프에서 야식으로 피자가 나왔는데도 입도 대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엔 참았던 거였지만 식이조절을 하고, 운동하러 가는 건 점차 습관이 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살이 빠졌다. 극적으로 살이 빠지진 않았지만 다이어트 기간이 길어지니 옷 사이즈가 줄어갔다. 나는 닭가슴살의 촉촉함을 느끼고 있었고, 양상추에 뿌리는 드레싱도 점점 양이 적어지고 있었다. 라면 먹는 게 더 이상 좋지 않았고 자주 가던 떡볶이집의 떡볶이가 자극적이라 느껴졌다. 내 체형도, 입맛도 변해갔다.
내가 좋아하는 건 그런거였다. 고기, 기름진 것, 크림, 치즈, 버터, 하얀 음식들...빵과 면, 떡... 다이어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음식들이 나는 좋았다. 다이어트 음식을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부역자인 내가, '뚱뚱해도 괜찮아! 내 몸이 들어가는 옷을 옷가게에서 살 수 없는 건 패션 산업의 잘못이야!' 하고 소리치는 내면의 페미니스트를 달래가며 빻은 사회와 타협하는 과정이었다.
입맛이 변하는 건, 나를 잊어가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먹는게 즐겁지 않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먹었다. 짜고 맛없었다. 그 때 충격을 받았다. 맥도날드 감자튀김이 너무 좋아서 항상 햄버거 단품이나 콤보가 아닌, 세트 메뉴를 시키던 나였는데. 혼란이 왔다. 타협이고 절제일 뿐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난 다이어트를 관두고 그냥 맛있는 거 먹으면서 나름대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69kg 이 되면 두끼떡볶이에 가야지'하고 다짐했던 때가 아득할 정도로, 지금은 객관적으로 뚱뚱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타협' 없이, 망설임 없이 엄격한 다이어트를 그만둘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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