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2024. 2. 16. 20:00

아이유의 '홀씨' 공개에 부쳐.

아이유의 "Love wins" 티저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아이유가 대국민 커밍아웃을 하나?' 라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었다. 하지만 나를 빼고는 그런 상상을 한 사람이 없었나보다. 평소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지지발언을 한 적 없던 사람이 그 구호를 쓰는 건 문화 전유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이어 곡에 대해 설명하는 손편지가 공개되었고, "Love wins"가 성소수자 지지의 의미를 담은 곡이 아닌, 팬송이라는 사실에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담엔터테인먼트에서는 노래 제목을 "Love wins all"로 바꾸고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두를 더욱 존중하고 응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나는 그런 결정이 제법 고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유라면 비판의 목소리가 있음에도 신경쓰지 않고 고집스럽게 활동을 이어나갈 거라고 예측해서이다. 그는 대스타이지만 여성이라 여러 번 억까에 시달렸었고, 억까에 익숙해지면 본인을 향한 비판조차 억까로 해석하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악플에 대해 논의할 때 비판은 괜찮고 비난은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사실 부정적인 목소리 구름을 딱 잘라서 비판과 비난으로 나누어 비판은 수용하고 비난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제목을 바꾼 노래는, 뮤직비디오가 먼저 공개되고 음원은 조금 뒤에 발매되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나는 '이건 진짜 망했는걸. 욕을 많이 먹겠는걸' 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노래 가사만 들으면 퀴어 서사를 착즙해볼 여지가 있으나, 뮤직비디오는 너무나도 예쁘고 멋진 여성과 남성의 사랑 이야기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거기다 장애를 아름답지 못한 대상으로, 비장애를 낭만적인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비판도 얹어졌다.

티저 발표 이후에 나오는 목소리들을 보는 것은 굉장히 피곤했다. 논란 자체가 피곤했다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보는 것이 피곤했다. 아이유에 대해 관심도 애정도 없는 사람들이 건수 잡았다는 듯이 내던지는 부정적 의견이 너무나도 보기 싫었다. 작년의 나는 10번 중 9번을 잘해도 1번을 잘못하면 문제적인 인물로 낙인찍고 손절하고 비난하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그들은 그런 행위를 스포츠처럼 즐기는 것 같았다. 아이유가 이렇게 된 이상 장애인,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에 기부해야 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남에게 돈을 맡겨놨는지, 본인은 운동에 제대로 참여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Love wins" 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만 쓰이는 말이 아닌데요? 이러고 있는 일부의 유애나도 꼴보기 싫었다. 본인이 무지한 것은 자랑스럽게 내보일 게 아니다. 편을 나눠 싸우는 것이 보였으나 어느 편에도 서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 유애나로서 애정어린 비평을 나눠준 분의 글이 있어 공감이 많이 되었다. (https://posty.pe/h7z9a6)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 공개 이후에도, 앞으로 나올 미니 앨범에 대한 티저가 발표되었고, 오늘은 '홀씨'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올라왔다. 이번 논란 이후에 아이유의 무언가가 발표될 때마다 이번엔 어떤 구설이 생길지 불안했다. 홀씨 뮤직비디오가 올라오자마자 시청했고 문제될 건 없어보인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장애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캐치하지 못했으므로 이번에도 내가 알아채지 못한 문제점이 있을까 싶어 아직 불안한 마음이 해소되진 않았다.(나의 부족함으로 뮤비 등장인물이 장애인이라는 것조차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가수 본인도 나처럼 두려우려나. 아니면 그저 내가 유리멘탈인 걸까.

덧 1. 손편지에서 언급되었던 '대혐오의 시대'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혐오는 옛날부터 있었고 지금은 혐오라는 언어 표현이 생겼으며 소수자들이 투쟁하는 시대이다.

덧 2. 아이유 콘서트는 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므로 티켓팅이 어렵다. 그래서 (정말 나쁘고, 내놓기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이번 일로 탈덕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3월 콘서트 예매 대기순번이 역대급으로 뒤쪽이었다.(그래도 티켓을 구해서 다행이야)


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