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책이야기2017. 6. 16. 20:51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7장 중 1장을 읽었으니 읽기 시작했다고 해야하나.

1장까지 읽고 나는 감탄했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화자는 생리를 시작하는데, 그 부분을 어떠한 판타지적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실 남성 소설가의 글을 읽어보면 여성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실제 여성이 아니라 본인의 환상 속 여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이 싫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소설을 읽기 전 작가의 사진을 먼저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여성 작가가 썼을 거라 짐작했을 것 같다. 


"입국 심사대 앞에 서 있을 때 생리가 터졌어. 줄 선 시간이 아까워서 화장실에 갈까 말까 조금 망설였는데, 사실 망설일 상황이 아니었어. 생굴 같은 게 막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어. 화장실에 가서 봤더니 팬티에 이미 피가 꽤 묻어 있는 거 있지. 가방에 생리대가 하나 있기는 했는데 여벌 속옷은 당연히 없었지. 화장실에 있는 휴지로 최대한 피를 닦아내고 팬티에 생리대를 붙였어. 달리 방도가 없잖아."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 12쪽

이 부분에서 나는 김훈 작가의 <언니의 폐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불가피했다,...

그래 이게 여성이지. 이게 생리지.
아직 1장밖에 안 읽어봤지만 남은 부분들도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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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17. 6. 13. 23:27

언니란 단어에 대하여.



나는 언니란 단어가 싫었다. 정확히는 '언니' 란 단어로 호칭되는 게 싫었다. '언니'는 손윗사람인 여자를 부르는, 나이주의와 성별이분법에 기반한 호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니'로 불리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 사이에는 자연스레 나이권력에 따른 위계가 생긴다. 평등한 관계의 걸림돌이 되고, 개인간의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서로 이름을 부를 때와는 달라지게 된다. '언니'란 호칭을 정하는 과정에 반드시 서로의 나이를 알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내 나이를 밝히는 순간 어린애가 되어 상대방보다 낮은 위계에 있게 되고, 발화권력이 없어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 과정을 내가 겪는 것도 싫었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언니'라는 호칭이 싫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 호칭이 멸칭화 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뭐라 해야할까.... 몇 년 전 꽤 오랫동안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호칭이 '언니'였던 것 같다. 그 때 난 스무 살이었는데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다들 날 '언니'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 또는 중년의 여성들이었지만 가끔 나를 '언니'라 부르는 중년의 남성들도 있었다. 언니란 단어는 여성이 연장자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일종의 컬쳐쇼크를 받고 '아 이것이 경기도의 문화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알고보니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은 대부분 언니로 불리고, 심지어 직업 호칭을 부를 수 있는 경우에도 존중의 의미를 소거한 호칭을 쓰고 싶은 경우엔 언니라고 불리더라. 성매매 업소의 성판매자들도 종종 '언니'로 불린다. ('언니들 상시대기' 같은 스팸을 본 적 없진 않을 것이다.) '아줌마', '아가씨'만큼 멸칭화 되진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언니'란 단어도 그 정도의 멸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같은 단어라도, 다른 사람이 쓰면 청자인 내가 받게 되는 느낌이 다르단 걸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접촉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요즘은 '야성의 꽃다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는데, 그 팟캐스트에서는 청취자를 '언니'라고 부르고 방송을 끝낼 때 "언니들, 안녕히." 하고 인사를 한다. 그 끝인사가 어찌나 따뜻하게 들리던지. "우리는 서로의 언니, 서로의 힘, 서로의 용기가 되어줄 거야." 라는 뒷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이대 농성 당시 졸업생들이 들고 왔던 "언니 왔다." 피켓도 믿음직한 언니들이 있다는 든든한 느낌을 주었지.(나는 이대생이 아님에도.) 인터넷의 많은 여초 커뮤니티 회원들이 부르는 '언니'는 친근하고 다정했지.


여성을 지칭하는 호칭은 어떤 호칭이든 멸칭이 된다. 원래부터 비하의 의미였는지 존경의 의미였는지와는 상관없이.(아가씨, 마누라, 여사, ...) 언니라는 단어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원래 비하의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 단어였고, 최근에 나는 그 단어가 여성 연대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단어로 쓰일 가능성을 보았다. 그렇다면 멸칭이 되었다고 해서 그 단어를 폐기하는 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이 긍정적인 의미로 열심히 써서 단어를 되찾아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사족 : 이 글을 쓰면서 '언니'의 어원을 찾아봤는데 이 단어는 20세기 초반에 우리말 문헌에 처음 등장하고, 일본어의 아니(兄)에서 변형된 것이란 추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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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후기2017. 6. 8. 03:44

짧게 써보는 서프러제트 감상 후기

1. 등장인물들이 치는 대사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었고 대부분의 대사는 현대의 우리에게 하는 말 같았다.

모드 와츠가 처음 구속되었을 때 "당신 서프러제트지?"하고 묻는 것이나 팽크허스트가 "포기하지말고 싸우세요" 하는 것들을 포함한 많은 대사들이. 깊은 감정 이입을 하며 봤다.

2. 모드 와츠가 남편에게 "우리가 딸을 낳았으면 그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고 물었더니 남편은 "당신 삶과 같은 삶을 살았겠지." 하고 대답한다. 모드는 이 대답을 듣고 서프러제트 운동을 해야겠단 맘을 더 굳게 먹지 않았을까.

3. 모드는 서프러제트가 된 지 얼마 안됐지만 오랫동안 운동을 해온 에밀리나 바이올렛, 이디스는 얼마나 지쳤을까?

4. 아내 없으면 밥도 못 챙겨먹고 애도 못 키워서 다른 사람에게 입양 보내는 남편은 참으로 한심하다.

5. 고문 장면이 나오는 줄 몰랐는데 다른 매체에서 나오는 것처럼 피튀기고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끔찍했다ㅠㅠ

6. 이디스의 남편은 서프러제트를 도왔단 이유로 감옥에도 몇 번 갔다온 사람인데도 마지막 운동 때 아내의 건강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경마장에 가려는 아내를 가둔다. 그 장면에서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2016년 7월 9일에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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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