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을 보면서 많은 감정들과 생각이 지나쳐 갔고, 그래서 꼭 후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벌써 영화 본지 2주가 지났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ㅎㅎ.. 그렇다고 해서 딱히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기에, 기억을 최대한 살려 후기를 남기려 한다. (스포有)
<1987>은 6월 민주 항쟁을 다룬 영화이다. 주입식 역사교육으로 인해 역사 공부를 극혐했던 나는(변명) 6월 항쟁을 포함한 민주화 운동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6월 항쟁에 대해 아는 거라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는 말도 안되는 말 정도였다.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거나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꺼리고, 영화를 보기 전 SNS에서 많이 접했던 비평이, 민주 항쟁에서 여성을 아예 지워버리고 알탕영화가 되어버린 이 영화를 보이콧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주로 자기 어머니의 운동 경험과 함께 말해졌다.) 그래서 영화를 볼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김태리가 멋진 운동권 언니로 나올 거니까 하는 기대와 덕심을 갖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따흐흑)
-웰메이드 영화, <1987>-
요즘의 한국 상업영화는 너무 뻔하다. 영화의 초반은 코미디적으로 구성해 웃음을 뽑아내고, 뭔가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서 긴장감을 일으키다가 마지막엔 감동과 따뜻함을 주어서 관객들을 엉엉 울게 하고 끝난다. 영화 하나로 극단적 감정기복을 구현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감정의 극단적인 흐름을 구성하기 위해 개연성 따위는 "영화니까." 라는 변명으로 가뿐히 무시해 버린다. 그래서 상업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관객들이 훌쩍이고 있으면, 난 왠지 시니컬해져서, 여기서 울면 작가와 감독의 뻔한 농간에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반면 <1987>에서는 이런 격정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톤으로 담담하게 팩션을 그려내고 있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는 메인 스토리가 있으면서도 다양한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민주화 투쟁을 하는 구성 역시 맘에 들었다.
한국 영화 특유의, "시끄러울 땐 빵!!! 대사는... 웅앵웅...쵸키포키..." 도 없었다. (사족 : 뽜ㅏㅇ!!!웅앵웅 쵸키포키.. 에 완벽히 부합하는 영화는 <군함도>였다. 엄청 시끄럽고 정신 없었는데 대사는 뭐라고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비록 김윤석 배우의 이북 사투리는 알아듣기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알아듣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받는걸까.
웰메이드 영화답게, 인위적인 감정의 과장은 없었지만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영화는 뜨거웠다. 특히 연희와 시민들이 각성을 하고, 문소리 배우의 목소리로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가 울려 퍼지는, <레 미제라블>의 오마쥬 부분에서는 뭉클함, 웅클함 정도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이 때,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오는데, 2017년에 오염되어버린 태극기라는 기표에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주기 위한 강력한 의도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태극기를 완전히 되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연희'라는 캐릭터의 서사에 대하여-
영화 <1987>에 대해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아쉬워하는 부분 중 하나는, 연희라는 캐릭터의 서사일 것이다. 나는 사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안 찾아보고 가서, 김태리 배우가 체크남방을 입고 짱돌 던지는 장면을 기대하고 영화관에 갔는데 정말로 경기도 오산이었다.
연희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수동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운동권을 싫어하고, 운동권 삼촌이 도움을 부탁할 때도 마지못해 나선다.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요?" 같은 염세적인 대사도 던진다. '멋진 운동권 오빠'의 희생을 통해 민주 시민으로 각성하는 부분은 이 서사의 정점이다.
물론 1987년 당시 이런 여성도 존재했겠지만 문제는 연희라는 캐릭터가 <1987>의 유일한 여성 주연이고, 어떠한 집합에서든 여성 개인은 과잉 대표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엑스트라를 포함한 기타 등장인물 중에서 애써 운동권 여성 주체를 찾아보는 착즙기-인간이 아닌 관객은, 민주화 투쟁 당시 남성만 고군분투하고 여성은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했을 것이란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한편, 연희에게는 로맨스 서사가 잠깐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한국의 관객들, 특히 이 영화의 주요 (타깃) 관객층인 운동권, 진보적인 청년, 힙스터 등은 수사하다가 연애하고, 환자 치료하다가 연애하고, 회사 일을 하다가 연애하고, 어쨌든 연애하고 연애하는 K-로맨스 서사에 염증이 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유일한 여성 주연이 운동권도 아닌데 로맨스까지 한다...! 그래도 나는 영화 전반과 조금은 다른 그림체로 묘사된 잠깐의 로맨스가 좋았다. 뜨겁고 암울하고 어두웠던 그 시기에도 24:7 투쟁모드가 아니라 사랑이 있고 일상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부족한 여성 서사-
이 영화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는 80년대 학번 대모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각오를 하고 영화를 봐서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알탕영화와 여성혐오적인 요소가 들어간 영화를 많이 봐서 역치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영화를 보면서 페미니즘적 착즙을 완료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셋 다인지 나는 이 영화가 그닥 불편하지 않았다. (착즙 : 민주 항쟁에 참여하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스치듯 등장한다. 한열과 연희를 숨겨 주는 신발가게 주인, 시위를 하다가 봉고에 태워져 어딘지 모르는 곳에 떨궈지는 여자들, 한열의 친구인 운동권 대학생,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들 등등..) 그냥 K-상업영화 답지 않게 완성도가 높고 담백하다는 생각을 하며 재미있게 보고 나왔다. ※그래도 벡델 테스트는 통과하지 못한다! 이름이 있는 여성 등장인물이 한 명밖에 없기 때문.※
GV에서 <1987>에 여성 서사가 부족하다는 질문에, 장준환 감독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만들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고, 많은 사람들의 어처구니를 빼앗았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저 대답이 어떤 의미였던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영화에 원톱 혹은 투톱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중심인물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모두 남성이므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을 때 남성 위주의 스토리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절한 설명이 없을 때 감독의 저 대답은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한 여성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나 설마 장준환 감독이 그런 의미로 말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글을 쓰면서 써치해보니 설마가 사람잡지 않았다. 이후 GV 직캠 영상)
여기까지가 영화를 본 직후에 들었던 생각이고, 지금은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30년 뒤에 <2017> 영화가 제작되었고 내가 그 때까지 살아서 그 영화를 봤는데, 이대생들이 등장하지 않고 군중들 사이로 무지개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면 조금은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여대 학생들의 행진 장면 떼샷이라도 3초정도 끼워넣었더라면 아쉬움이 조금은 덜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1987과 2017-
영화를 보며 머릿 속 생각의 가장 큰 비중은, 2017년 대한민국에서 또 한번 일어난 민주화 투쟁을 살짜기 겪은 경험과, 30년 전의 민주화 투쟁을 그린 영화를 비교하는 것이 차지하고 있었다. 1987년은 참 신기하고 모순적이었다. 허위 자백 또는 밀고를 받기 위해 고문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최루탄을 쏘고, 시위대와 전경은 육탄전을 벌인다.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반면, "법대로 합시다."를 외치는 검사가 있었다. 그 시대에도 민주적인 법이 있었다는 게, 비-민주적인 일이 공공연히 일어나는 현실과 모순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시대였던 걸까? 그러면 그 법은 언제 어디서 왔던 것일까?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할 수 있는, 공권력에 반대할 수 있는 시민의식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영화에 등장한 대학가의 분위기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만화동아리에서 5·18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학교 정문에 모여 시위를 진행한다. 지금 그랬다면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쟤네는 공부 안하고 뭐하냐', '왜 시끄럽게 하냐' 따위의 소리를 듣고 '만화동아리는 빨갱이 동아리다.' 같은 종북 몰이가 일어날텐데. 학교 앞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의 사진이 올라오면서 신상털이와 외모품평, 성희롱 등이 일어날텐데. 이런 분위기 변화는 우리 세대가 퇴보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 진보했기 때문일까?
나는 사회가, 그리고 대중이 항상 기득권의 입맛에 맞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최근의 촛불 시위도 모든 국정농단을 박근혜와 최서원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고 나머지 적폐들은 빠져나갈 수 있는 구실로 작용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영화 속에서는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자칫 잘못하면 고문을 당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시민들은 용기를 낸다. 택시 기사들이, 넥타이 부대가, 대학생들이 길을 막고 반-정부 행진을 하고, 투쟁은 승리로 끝난다. 대중을 움직인 힘이, 대중에 속해있는 수많은 개인의 정의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나도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지.
안타깝게도 1987년에 뜨거웠던 사람들 모두가 아직까지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고, 정부에서 내려온 보도지침을 과감히 무시하고 사건을 보도하는 장면은 21세기를 사는 나에겐 조금 낯선 장면이었다. 최루탄을 맞아가며 시위하던 사람들 중 완전히 꼰대 아재가 되어 기득권을 수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30년 뒤에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