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써보는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1일 후기. 음악 얘기는 빼고.
1. 이동수단
지난 8월 6일 토요일,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있었던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수인분당선 배차간격이 극악이라 바로 환승하면 1시간 30분, 타이밍이 안 맞으면 2시간도 넘게 걸렸기 때문에 렌트카를 타고 가야하나 잠시 고민했었다. 하지만 주차 공간이 부족할 수 있고, 바닷바람과 모래에 차가 상할 수 있다는 주최측의 공지를 보았고, 락페에서 맥주 한잔은 마시고 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2. 짐
입장 전 소지품 검사가 있을 것이라고 해서 홈페이지에서 금지 물품을 잘 읽어보고 짐을 쌌다. 돌아다니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볍게 싸는 것도 포인트였다. 슬링백에 손수건과 보조배터리를 넣고, 350mL 짜리 보온병에 찬물을 담아갔다. 현장에서 줄서서 물 사먹는 시간과 돈이 아깝고, 쓰레기도 줄이기 위해 물을 챙긴건데 너무 더웠기 때문에 물 2병과 아이스크림 하나를 행사장 내에서 더 살 수밖에 없었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오래 서있으니 다리와 발바닥이 아팠다. 쿠션 없는 샌들을 신고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3. 마스크
발권과 입장이 오래 걸리진 않았으나 행사장 내부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고(누적 관객 13만명이라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도 엄청 많았다. 나만은 살아남으려고 더워도 마스크를 꼭꼭 썼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어서 락페를 다녀온 후 월요일까지 기침을 하거나 하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퇴근 후 집에 오는 길에 자가진단키트를 이용해보니 음성이라 맘이 놓였다.
4. 더위
오후 2시쯤 달빛축제공원에 도착해서 생맥 500cc를 마셨다. 오후 5시쯤이 되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몇년 전, 옥토버페스트에서 1000cc 맥주 두 잔을 마시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미식거리는 게 꼭 숙취같았다. 평소 주량을 생각해보면 500한잔 마셨다고 이럴 리가 없었는데.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면 꼭 가보려고 벼르고 있던 것이었다. 방학 땐 늘 뭔가를 하느라 시간이 없었던데다가 락 페스티벌 티켓값은 소득 없는 대학생에게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전파되기 시작했고 락페스티벌은 열리지 않았다. 로망으로만 남겨뒀던 락페스티벌이 드디어 열린다고 하자 당장 티켓팅을 했다. 슬램을 즐기며 뛰어놀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었다.
8월 초의 토요일은, 중간중간 물을 뿌려주긴 했으나 금방 말라버릴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컨테이너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무더위쉼터가 있었으나 그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거기서 좀 쉬었어야 했는데. 슬램을 기대했으나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었고 그냥 얌전히(?) 앞에서 놀았다.
공연을 볼 땐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는 긴장이 풀렸는지 머리가 너무너무 아팠다. 나의 모든 행동을 후회했다. 맥주를 마시지 말걸. 락페스티벌에 오지 말걸. 아니 그냥 집에서 나오지 말걸.
씻는걸 싫어하지만 입고 갔던 검은 티셔츠에 소금기가 보일 정도로 땀에 절어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에서 난 곧장 잠들었고 눈을 뜨니 다음날인 일요일 저녁 6시였다.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에 공연을 봤다면 월요일 출근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 다행히 더이상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내 인생 첫 더위먹음이었고 나는 생각보다 약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5. 추억미화
에어컨 아래서 자고 일어나니 마취에서 깨어난 것 마냥 안 좋은 기억은 싹 사라졌다. 괜히 갔다고 후회할 땐 언제고, 유튜브에서 직캠을 찾아봤다. 신나게 슬램하던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다시 갈 수 있을진 정말 모르겠지만, 9월이나 10월 날씨 좋을 때 하는 페스티벌이 있다면 가서 정말 신나게 놀고 오리라는 다짐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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