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글2025. 5. 22. 23:35

올해 들어서 자꾸만 속이 안좋았다. 원래 식탐이 많은터라 음식이 눈 앞에 보이면 잘 먹긴 하는데, 먹기 전후로 음식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났다. 5박 6일간 일본 여행을 갔을 때도, 원래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처럼 이것저것 많이 먹고 오고 싶었지만, 속이 좋지 않아서 식당에 몇번 가지 못하고 밀크티나 마시다가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부터 지금까지는 회사에 있을때면 배가 아팠고, 주말엔 놀랍도록 괜찮아졌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설사를 했다. 디시인사이드 과민성대장 갤러리에 들어가니까 대장내시경을 꼭 받아서 신경의 문제일 뿐 대장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라는 게시글이 있었다.

그래서 얼마전, 인생 처음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너무 겁을 많이 먹었어서인지 준비 과정이나 검사 과정이 그렇게 괴롭진 않았다. 내 대장은 상태가 너무 좋다고 했는데, 위가 안좋다고 했다. 만성 위축성 위염이라고 했다. 검사 결과만 들었고 의사에게 진료를 받진 않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더 큰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기름지거나 맵고 짠걸 먹으면 안좋아진다고 하는데, 어쩐지 오늘 점심으로 닭도리탕을 먹고 나니깐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닭도리탕이 매운 음식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회사에서만 아프고 주말엔 괜찮았던 게, 회사 식당의 점심메뉴는 맵고 자극적인 것이 많고 집에서 해먹는 밥은 비교적 간이 약해서 그랬던 거였나보다.

전에 회사에서 만들던 제품에서 알 수 없는 품질 저하가 생겨서, 품질팀에 분석을 의뢰한 적이 있었다. 분석 신청을 받는 과장님은 어떤 방법으로 검사하고, 어떤 불량을 검출할 수 있는지 설명해줬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좋은 게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불친절했던 과장님은 불량 원인을 알아야 그걸 고쳐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냐며 나를 바보 보듯이 내려봤었다. 만성 위축성 위염으로 진단받은 게 딱 그런 느낌이다. 그동안 이유 없이 아팠는데 이제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면 안 아플 수 있겠네. 근데 그럼 한국인은 뭘 먹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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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아주짧은글2025. 5. 21. 23:11

회사에서 하는 일본어 스터디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는데, 선생님도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진급 심사할 때 어학 성적을 보기 때문인지 회사에서 이런저런 외국어 학습에는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는 편이다.

사실 나는 작년까진 초급 레벨 스터디에 있다가 작년 말에 쳤던 시험에서 대박을 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높은 성적을 받아가지고(성적 확인 페이지에서 오류난 게 아닌지 몇 번을 새로고침 했었다), 올해는 고급반으로 두단계 상승했다. 운동이든 악기든 외국어든 초급 수준을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고급반에는 사람이 많이 없다. 그래서 고급반 스터디는 최소 인원을 채우지 못해서 한동안 열리지 못했다가 이번달에야 열리게 되었다.

스터디를 시작한 날에,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일본어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일본 지사로 파견 다녀온 분, 대학생 때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는 분부터 일본 고객사에 영업하시는 분까지 우리 회사에서 일본어를 잘한다는 사람들만 다 모인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나 빼고는 서로서로 알고 계셨다. 선생님이 외국어 실력은 빠르게 늘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투자한 시간만큼 걸려서 오랜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는 거라며, 절대 남과 비교해서 주눅들지 말고 과거의 나 자신보다 발전해야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들을 땐 별 생각 없었는데 지금보면 나에게 너무 필요한 말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분들이 일본어로 엄청 빠르게 와다다다 말해서 꽤나 주눅들게 된다. 초급반에선 내가 제일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그러고보면 초급반에 들어갔을 때도 나는 첫날에 엄청 뚝딱거렸고, 몇 달간 같이 스터디를 했다는 분들이 자기소개하는 것을 들으며, '저렇게 잘하시는데 왜 아직 초급반에 계실까? 나도 초급 탈출까지 오래 걸리려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열심히 공부했더니 그 분들을 제치고 먼저 초급을 탈출했다. 다시 열심히 해서 이 스터디 그룹의 유창한 분들을 빨리 제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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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아주짧은글2025. 5. 19. 23:29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정시퇴근 이라는 것을 해봤다. 여섯시가 가까워질 때면 같이 일하는 분들이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다들 주섬주섬 겉옷을 입고, 슬리퍼를 운동화로 갈아신으실 때 나도 같이 나가는 척 운동화를 신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들 나간걸 확인한 다음에 빠르게 가방을 챙기고 컴퓨터를 끄고, 후드티로 얼굴을 가린 다음에 버스 타는 곳까지 갔다. 다행히 아무도 만나지 않고 퇴근할 수 있었다. 성공적인 퇴근 첩보작전이었다.

요즘 나는 왜 항상 정시퇴근을 못하고 끝없는 야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다들 야근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나만 근무 시간이 짧아버리면 관리자 입장에서는 내 업무가 별로 없는 줄 알고 더 많은 업무를 줄 것이며(이건 나의 뇌피셜이 아니라 관리자가 나 말고 다른 동료에게...직접 내뱉은 말이다. 남자들의 뒷담화는 무섭다.) 지금 하고 있는 실험에서 그닥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찍 퇴근해버리면 일이 잘 되지 않음에도 내팽개치고 집에 가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주 52시간을 꽉 채워서 일하고도 잘 안되었다고 해야지만 '시간이 없었다.'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진급 심사가 얼마 남지 않은 연차이기 때문에 눈치보지 않고 내멋대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아주 불가능할 건 없지만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입장에서라면 어려운 거다.

사실 야근을 매우 많이 하는 요즘의 업무량은 하루 8시간동안 100% 집중해서 하는 양보다 조금 적게 느껴지긴 한다. 실험 특성상 내가 뭔가를 만져야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하고. 그렇지만 관리자가 야근을 하길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냥 힘을 빼고, 졸리면 스마트폰도 보고 멍때리기도 하면서 천천히 일하곤 한다. 퇴근하고 11시쯤 집에 들어와 6시반에 집에서 나가면 잠이 모자라기 때문에 피곤해서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하지만 관리자의 눈에 보이는 건 나의 집중력이 아니고 '근무시간'이라는 '숫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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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