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영화관에 갔다가 역대급 관크를 경험하고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유독 요즘 영화관에 관크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들을 어디서 주워들었지만, 영화관에 그렇게 자주 가는 편은 아니라 그런지 그닥 불편한 상황을 겪은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3월에 개봉한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너무 바쁘다보니 영화관에 갈 시간이 나지 않았고 개봉한지 두 달이 되어서 점점 상영관이 없어져가는 상황이었다. 두 달동안 크게 기대했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영화관에 갔는데 너무 속상하게 되었다.
우리의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부부와 남자아이 하나였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아이는 "와, 고양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까지는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인생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이들은 그럴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이의 아버지가 영화관에서는 조용히 해야한다고 알려주기는커녕 "그러네, 고양이가 나왔네." 하고 대답을 했다. 영화관에 있었음에도 아이의 아버지는 도통 오디오가 빌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양이가 집에 들어갔다.", "고양이가 사냥을 하네." 하고 끊임없이 화면 생중계를 했다. "이게 뭐지?"하고 아이에게 먼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게 속닥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집에서 TV를 보며 대화하는 정도의 데시벨이었다. 전날 야근해서 피곤한데다가, 원래도 청각이 예민한 편인데, 더 예민해졌고, 짝꿍이 옆자리에서 과자를 먹는 소리까지도 너무 거슬려서 그만 먹어달라고 짝꿍에게 부탁했다.
영화 중반쯤에는 아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는데, 속으로 '제발 가라' 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집에 가고싶어졌고, 짝꿍이 더 뒷자리로 가자고 제안해서 자리를 옮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용히 해주세요." 한마디 정도 할 수 있었던 건데 나는 왜 그 말을 꺼낼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 걸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다른 관객들도 소음 피해를 당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이가 포함된 관객 무리 때문에 관크를 당했지만, 노키즈존이 필요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뒷자리로 옮기니까 더 어려 보이는 어린이 관객들도 조용히 집중해서 관람하고 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관크 땜에 도통 집중을 못했던 나보다 더 집중력이 좋은 것 같았다. 영화 관람 매너를 몰랐던 건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었다. 나는 절대로 영화관에서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영화를 봐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같은 타이밍에 함께 웃는 것, 공연 실황 영화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와, 멋지다!" 같은 관객의 리액션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영화관에 와서 아이와 영화 리액션 비디오를 찍는 것처럼 대화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스트레스였다.
진짜 기대하면서 봤던 영화였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은 들었는데 관크 때문에 완전히 집중하지도 못했고, 중간중간 많은 장면을 놓쳐서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설사를 했다. 나는 과민 대장 증후군이 맞다는 걸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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