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글2025. 5. 12. 23:00

주말에 영화관에 갔다가 역대급 관크를 경험하고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유독 요즘 영화관에 관크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들을 어디서 주워들었지만, 영화관에 그렇게 자주 가는 편은 아니라 그런지 그닥 불편한 상황을 겪은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3월에 개봉한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너무 바쁘다보니 영화관에 갈 시간이 나지 않았고 개봉한지 두 달이 되어서 점점 상영관이 없어져가는 상황이었다. 두 달동안 크게 기대했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영화관에 갔는데 너무 속상하게 되었다.

우리의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부부와 남자아이 하나였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아이는 "와, 고양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까지는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인생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이들은 그럴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이의 아버지가 영화관에서는 조용히 해야한다고 알려주기는커녕 "그러네, 고양이가 나왔네." 하고 대답을 했다. 영화관에 있었음에도 아이의 아버지는 도통 오디오가 빌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양이가 집에 들어갔다.", "고양이가 사냥을 하네." 하고 끊임없이 화면 생중계를 했다. "이게 뭐지?"하고 아이에게 먼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게 속닥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집에서 TV를 보며 대화하는 정도의 데시벨이었다. 전날 야근해서 피곤한데다가, 원래도 청각이 예민한 편인데, 더 예민해졌고, 짝꿍이 옆자리에서 과자를 먹는 소리까지도 너무 거슬려서 그만 먹어달라고 짝꿍에게 부탁했다.

영화 중반쯤에는 아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는데, 속으로 '제발 가라' 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집에 가고싶어졌고, 짝꿍이 더 뒷자리로 가자고 제안해서 자리를 옮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용히 해주세요." 한마디 정도 할 수 있었던 건데 나는 왜 그 말을 꺼낼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 걸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다른 관객들도 소음 피해를 당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이가 포함된 관객 무리 때문에 관크를 당했지만, 노키즈존이 필요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뒷자리로 옮기니까 더 어려 보이는 어린이 관객들도 조용히 집중해서 관람하고 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관크 땜에 도통 집중을 못했던 나보다 더 집중력이 좋은 것 같았다. 영화 관람 매너를 몰랐던 건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었다. 나는 절대로 영화관에서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영화를 봐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같은 타이밍에 함께 웃는 것, 공연 실황 영화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와, 멋지다!" 같은 관객의 리액션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영화관에 와서 아이와 영화 리액션 비디오를 찍는 것처럼 대화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스트레스였다.

진짜 기대하면서 봤던 영화였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은 들었는데 관크 때문에 완전히 집중하지도 못했고, 중간중간 많은 장면을 놓쳐서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설사를 했다. 나는 과민 대장 증후군이 맞다는 걸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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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아주짧은글2025. 5. 10. 23:12

2년 반 동안 아빌리파이를 복용하면서 몸무게가 30kg 늘었다. 트위터에서 보니까 아빌리파이를 먹으면 살찐다고 '돼빌리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더라.

복용을 시작한지 6개월 됐을 때 8kg 정도가 늘었다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살 찌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닐텐데... 라고 하시며 식욕 억제제를 처방해주셨다. 그 약은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뉴스에 자주 나오던 약과는 다른 것인지, 나에게 어떤 작용도 부작용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식욕 억제제를 복용하면서도 행복하게 잘 먹었다 ㅋㅋ

왜 이렇게 살이 많이 쪘냐는 엄마의 타박에, 정신병이 생겨 약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답하니 엄마가 살 찌는 약을 그만 먹으라며 심리상담 비용을 내준다고 했다.(내가 원했던 건 아님) 내가 직접 심리상담사를 찾아서 상담을 받게 되면 사짜라서 못 믿는다고 할 게 분명해서, 엄마가 추천해주는 상담사님을 만났다. 1회기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사님이 어려운 문제를 적극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시고 상담을 꼭 지속하진 않아도 되겠다고 하셨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불행에 빠졌을 땐, 그 시기가 언제 끝나지 않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불행해지게 되는 것 같다. 우울증이 2년 반 후에 끝날 걸 알고 있었더라면 더욱 단단하게 잘 버틸 수 있었을텐데.

시간이 지나 우울증은 사라지고 살찐 몸이 남았지만, 지금 보면 살아남아서 세상에 있는 많은 즐거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살 같은 건 정말로 큰 문제가 아니다.

<화산귀환>을 보면 사패련이 사천당가에 쳐들어왔을 때, 당가주는 사람이 남아있으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며 가문의 모든 비기와 집기를 버리고 달아난다. 마찬가지로 나에겐 생명이 남아있고, 살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방법대로 빼면 되는 거니깐.

살찐 걸 자꾸만 인식하게 하는 '유일한'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서 딱히 멘탈이 흔들릴 일도 없는 것 같다 ㅋㅋ 일단 작년 여름부터 한달에 1kg 정도씩 감량중인데 지금까진 잘 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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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아주짧은글2025. 5. 9. 23:30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 퇴근을 하지 못해서 백글 마감은 어떻게 해야하나 초조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면 12시가 넘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세이브 원고를 준비해놔야하나 고민중이다. 생각해보면 이론적으로는 매일 1편씩 글을 쓸 필요는 없고 주말에 날 잡아서, 하루에 7편을 완성한 다음에 하나씩 올리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 심리상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겠지... 아니, 인간 심리가 아니라 마감 때까지 미루다가 마감 직전에 해치우는 게 익숙한, 나의 심리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회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왔는데, 식사를 한 것 같은 포만감이 전혀 없고 여전히 배고프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른데, 회사에서 먹은 저녁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고픈 이유는 무엇일지 직장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집에서는 저녁 먹고 쉬지만 회사에서는 밥 먹고 다시 일하느라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답이었다. 한 8시 정도까지는 얼른 마치고 퇴근한 다음 집에 가서 야식삼아 간장계란밥을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이제 집에 가서 야식을 먹어버리면 배불러서 잠들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자는게 맞을 것이다. 도착하면 졸려서 밥먹을 힘도 없지 않으려나. 사실 지금은 엄청 졸리지만 집에 가면 놀아야 된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질지도 모르겠다. 퇴근하면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어쩌다 이렇게 늦게 되었는지 되짚어보면, '이거만 고치면 잘 되지 않을까?'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음주 월요일에 휴가이기도 해서, 오늘까진 뭐라도 결과가 나와야된다는 마음에,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은데, 잘 될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결합해서 결국 시간만 쓰고 늦게 퇴근하는데 잘 풀린 건 하나도 없는 결과를 갖고 왔다.

막차 시간은 지난지 이미 오래고, 너무 졸려서 다 던지고 퇴근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이 안전하게 운전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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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