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글2025. 5. 8. 23:55

직장인 밸런스 게임 짤을 봤다. "조용하고 회식도 없고 존댓말 쓰는 회사" vs "자주 수다 떨고 친하면 반말 쓰는 회사"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이 밸런스가 맞도록 만든 것이 맞는지 건지 고민하면서, 당연히 전자를 골랐다.

사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걸 아주 좋아하고, 상대방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 내가 말하고 남들이 빵 터지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관중 앞에서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절대로 그런 면모를 드러내지 않는다. 무례한 사람들은 '웃긴'사람과 '우스운' 사람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스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리면, 그 때부터 장난을 빙자한 무례한 말들이 쏟아지곤 한다. 그리고 실수했을 때나 허점을 보였을 때 농반진반의 갈굼이 들어온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회사 사람들 앞에서는 굉장히 말을 가려서 하는 편이다. 재미있는 농담이 머릿속에 떠올라도 입을 꾹 다물고.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하는 걸 극도로 경계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말실수를 할까봐.

한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나서 이야기했을 때 그 말을 들은 '머글'이 날 이상하게 볼까봐 조심하는 것이기도 하다.(전문용어로는 일코해제라고 한다.) 전에는 김애란 작가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신 분이 있어서, 저도 몇번 읽어본 적 있다고, <비행운>도 읽었고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를 읽었고 <두근두근 내인생>은 시험기간에 읽어서 더 재밌었다고 말씀드리니까 자기는 그 정도까지 다 읽은 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좋아하면 다 '도장깨기'를 하는 것 아니었냐고요. 심지어 나는 그 작가님을 '가장 좋아한다.'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전집을 읽어본 것도 아니었는데. 최애를 정하는 것이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것인가요!

그래도 그날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던 분은 머글이었을뿐 무례한 분은 아니셨다. 직장 생활을 지금껏 하면서, 퇴사 에세이집을 내게 된다면 들어갈만한, 수많은 고통스럽고 무례한 스몰토크를 들어왔고, (아마도) 공격의 의미가 없었던 말들을 듣고 상처받아서 집에 오는 길에 운 적도 있었다. 그런 나날들을 지나, 별로 고민 없이 '조용한 회사'를 선택하는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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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아주짧은글2025. 5. 7. 23:17

2025년 1분기를 돌이켜보면, 13주 중에 신체 컨디션이 온전히 좋았던 건 2주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심지어 2월에 1주일간 휴가 쓰고 해외여행을 다녀왔을 때도, 소화불량과 추위 때문에 힘들었다. 어렵게 간 여행인데 온전히 즐기지 못해서 속상했었다.

작년 11월부터는 그냥 한달에 반 정도는 감기에 걸려있었다. 감기도 그냥 3~4일 정도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면 나을 것 같은데, 감기로는 병가를 쓸 수 없고 내 연차를 써야 하는데다가 내가 쉰다고 업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냥 출근하고 야근하다보면 2주, 3주가 지나도 낫지 않곤 했었다. 2분기가 반쯤 지나간 지금, 좀 나아지나 싶었더니 며칠 전 먹은 술과 숙취 이후로 원래 몸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오늘 아침엔 4일만에 출근을 했는데,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보통 출근길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데 오늘은 답답함에 잠에도 들지 못해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하며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문을 여니까 입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화장실가서 토해야 되나 생각하다가, 심호흡해서 토기를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대학생 때는 소주를 몇병씩 마셔도 토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걸핏하면 토한다.

올해 들어 계속 신체의 어딘가가 아픈데, 대단한 병으로 아픈 건 아니고 감기, 과민성대장, 장염, 근육통 같은, 가만히 쉬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낫는 병들이다. 그런데 이런 병들 때문에 휴직이나 병가로 회사를 쉴 수는 없으니까, 그냥 시름시름 계속 아프고 업무도 잘 못하겠고 진퇴양난이다. 병가 쓰는 회사 동료를 6년 동안 3번 봤는데, 다들 수술이 필요한 병이었거나, 뼈가 부러졌거나 어딘가에서 실신했거나 그런 분들이었다.

원래 회사원들은 다들 아파도 돈이 필요하니까 참고 출근하면서 사는걸까? 아니면 내가 특별히 약한 걸까? 만약 후자라면, 약체인 나는 어디 가서 돈을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할까? 노동해서 돈을 벌어야 생계를 유지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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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아주짧은글2025. 5. 5. 23:44

취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자타공인 '주당'이었다. 지금 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고, 쉽사리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술이 좋았던 이유를 떠올려보면 가장 큰 이유는 잠을 쉽게 잘 수 있게 해줘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속노화'가 일종의 트렌드가 된 지금은 다를까 기대해보지만,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까지는 다들 잠은 죽어서 자는 거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선생님들은 '사당오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은 옛말이고, 요즘은 '삼당사락'이라고 했다. 나는 공부는 잘 안했지만 잠을 자면 안된다는 말만큼은 착실히 들었던 것 같다. 밤에 잠을 잘 못자니 낮에는 걸핏하면 졸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 밤에 잠드는 것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살아왔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술을 마시는 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었고, 술을 많이 마시면 눕자마자 잘 수 있었다. 그땐 왠지 숙취란 것도 별로 없어서 ,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쓰러지듯 잠드는 것을 즐겼다. 아마도 알콜 중독이 아니었을까 싶다.

취업하고 나서는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회사 돈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주사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했던 말을 또 한다거나,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들. 나는 내가 그럴까봐 회식 때 술을 마시면서도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데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사실은 주당으로서의 삶이 좋았던 것이, 웬만한 남성들보다 많은 술을 마실 수 있는 내가, '여자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짧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편견은 공고하고,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본다면, 편견을 깨기보다는 그저 그 사람을 예외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고 끝내기 때문이다. 결국 술을 마시는 건 편견을 깨지도 못하면서 내 건강만 해치는 행위였다.

재작년부터는 월 1회 이상은 술을 마시지 않았고, 웬만해선 한 잔 정도로 끝냈다. 그래서인지 20대 초반에 자주 겪었던 갑작스런 속쓰림, 소화불량과 브레인포그 같은 것들을 겪지 않고 있다. 객관적으로 남들과 비교하면 약한 체력이지만, 살면서 최고로 체력이 좋다. 정신도 맑아져서 대학 공부를 다시 하면 더 쉬울 거 같은 느낌이다.(그렇다고 대학생 때로 절대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비싼 술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제는 돈도 많이 아끼고 있다. 주당 시절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의아했지만, 지금은 왜 진작에 술을 끊지 않았는지 후회할 정도다.

그리고 어제 숙취로 고생하면서 한번 더 깨달았다. 역시 술은 백해무익하고 마시지 않는 것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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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