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글2025. 5. 15. 23:18

지하철에서 서 있는 것이 그나마 덜 힘들고, 조금은 즐거워지게 되었던 건 지난달부터였다. 어떤 음악 페스티벌에 가고 싶어서 후기를 찾아보다가 마이데이분이 쓰신 페스티벌 스탠딩 존버 후기를 보게 되었는데 매일 지옥철로 출퇴근했더니 페스티벌 스탠딩석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오랫동안 서있었음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부터 지하철에서 서서 이동할 때면 페스티벌 스탠딩 준비중이라고, 이렇게 계속 연습하면 지치지 않고 즐겁게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1시간 정도 서서 이동했는데 조금 덜 힘든 것 같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식사를 끝내고 산책하던 중, 큰 소리로 찬송가를 틀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분을 보았고 그 길을 지나가던, 누가 봐도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분이 스마트폰으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찍고 있었다. 나에겐 그냥 매일 보게되는 짜증나는 소음이었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보기엔 이국적이고 이색적인 풍경이었던 것일까.

올리브영에서 커다란 쇼핑백을 가득 채워서 나오는 외국인들은 도대체 뭘 그렇게 사오는 걸까? 돈키호테에서 킷캣과 간장계란밥 소스, 곤약젤리와 치즈케이크맛 과자를 잔뜩 사서 나오는 나를 보던 일본인들도, 저 한국인은 뭘 그렇게 가득 사서 나오는건지 궁금했겠지?

아트하우스모모에 영화를 보러 가거나, 삼성홀에서 하는 콘서트를 보러 이화여대에 가게 되면 동화속같은 건물이 늘어선 이화여대가 너무 예뻐서 감탄하곤 한다. 시위하러 광화문으로 가면서 지금은 사라진 옛 국가의 성벽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대 학생들은, 종로구에 사는 시민들은 그런 풍경을 매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광화문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도 광화문이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같은 사건이라도, 같은 풍경이라도 내가 어떤 입장에서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내가 받는 느낌과 감정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다고 좋지 않은 상황도 생각을 바꾸면 달라진다는 식의 초긍정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냥 신기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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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아주짧은글2025. 5. 14. 23:55

애인님과, 20년전의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했다.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다가, 어릴 때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중에는 '분노'도 있었다는 대화를 하다가 이어진 것이었다. 20년전의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여기에 써도 될지 잘 판단이 되지 않는 이유로, 살던 곳을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를 만난다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할거냐고 애인님이 물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학창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더 열심히 해야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사는 방법을 몰랐다고 해야 될까. 가령, 성적을 잘 받고 싶었지만, 어떻게 공부해야 잘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시간만 많이 썼던 것 같다.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니까, 학습량을 따라잡지 못해서 늘 시간이 부족했고, 학생은 잠을 줄이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회 분위기와 합쳐서 굉장히 좋지 못한 방향의 시너지를 냈던 것 같다.

그러면 학창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열심히 살라고 해주고 싶냐면, 첫째는 오늘 하루에 아쉬움이 남더라도 12시에는 꼭 잠들라는 것, 둘째는 멀티태스킹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건 꼭 지켜줬으면 좋겠고, 만약에 한 가지만 더 할 수 있다면 어떤 종목이더라도 운동을 최소한 주 1회 정도는 꼭 해야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 세가지를 지켰다면 지금의 내가 더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지금도 세가지를 잘 지키면 20년 뒤에 잘 살고 있을 것 같아서, 이 글을 마치자마자 자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유의 팔레트'에 윤하님이 출연하셨을 때, 열여섯의 윤하를 만난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냐는 아이유님의 질문에, 윤하님은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었다. 그 유튜브 방송을 볼 때는, '충분히 성과도 있었고 열심히 살아오셨을텐데 왜 저렇게 말씀하시지?'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도 똑같이 이야기 하고 있네. 이런 마음으로 말씀하신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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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아주짧은글2025. 5. 13. 23:37

작년부터 구몬 일어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 구몬 일어는 A단계부터 시작해서, 더 높은 단계로 갈 때마다 B, C, D, ... 와 같이 단계가 오르고, 한 단계당 200장의 학습지로 되어 있다. 그리고 한 단계가 끝나면 교재종료테스트를 통과해야 다음 단계의 진도를 나갈 수 있다.

지금 나는 2주째 종료테스트를 미루고 있다. 구몬 일어 초반의 종료테스트에는 보기가 있어서, 시험 전에 교재를 한번 흝어보고 나면 통과할 수 있었는데, 1년동안 꽤나 높은 단계로 올라갔다보니 이제는 시험지에 보기가 없어져서 너무너무 어려워졌다.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나오는 일본어 문장을 통째로 써야지 정답이다. 게다가 나는 작년에 일본어 자격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난 다음부터 공부할 의지가 많이 사라진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4월부터 미친듯이 야근중이라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에너지가 거의 없다. 사실 작년에도 야근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요즘보다 1~2시간 정도는 일찍 집에 돌아왔었고, 아프지 않아서 주말에 열심히 쉬지 않아도 되었기에 주말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일본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열심히 쉰다는 말의 어감이 이상하지만, 요즘은 정말로 주말에 열심히 쉬고 있다.) 머리 아픈 역학공부 대신 일본어 공부를 하는게 좀 더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어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체력도 따라주지 않고, 레벨이 높아지면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한 진입 장벽이 더욱 높아진 느낌이다. 종료테스트를 더 미루는 건 좀 그런데 내일 일찍 퇴근하고 공부할 수 있으려나...

체력이 달리는 와중에 대선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었다. 사실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된 것도, 어제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피켓팅하는 사람들을 봐서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왜 평소엔 조용하다가 선거전에만 시끄럽게 노래하고 인사하고 춤을 추는지 궁금했는데, 정당활동을 해보니까 선거운동기간에만 그렇게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고, 정치인들은 평소에도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이번엔 진짜 선거운동을 할 힘이 없어서 동지들한테 너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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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