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정시퇴근 이라는 것을 해봤다. 여섯시가 가까워질 때면 같이 일하는 분들이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다들 주섬주섬 겉옷을 입고, 슬리퍼를 운동화로 갈아신으실 때 나도 같이 나가는 척 운동화를 신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들 나간걸 확인한 다음에 빠르게 가방을 챙기고 컴퓨터를 끄고, 후드티로 얼굴을 가린 다음에 버스 타는 곳까지 갔다. 다행히 아무도 만나지 않고 퇴근할 수 있었다. 성공적인 퇴근 첩보작전이었다.
요즘 나는 왜 항상 정시퇴근을 못하고 끝없는 야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다들 야근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나만 근무 시간이 짧아버리면 관리자 입장에서는 내 업무가 별로 없는 줄 알고 더 많은 업무를 줄 것이며(이건 나의 뇌피셜이 아니라 관리자가 나 말고 다른 동료에게...직접 내뱉은 말이다. 남자들의 뒷담화는 무섭다.) 지금 하고 있는 실험에서 그닥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찍 퇴근해버리면 일이 잘 되지 않음에도 내팽개치고 집에 가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주 52시간을 꽉 채워서 일하고도 잘 안되었다고 해야지만 '시간이 없었다.'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진급 심사가 얼마 남지 않은 연차이기 때문에 눈치보지 않고 내멋대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아주 불가능할 건 없지만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입장에서라면 어려운 거다.
사실 야근을 매우 많이 하는 요즘의 업무량은 하루 8시간동안 100% 집중해서 하는 양보다 조금 적게 느껴지긴 한다. 실험 특성상 내가 뭔가를 만져야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하고. 그렇지만 관리자가 야근을 하길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냥 힘을 빼고, 졸리면 스마트폰도 보고 멍때리기도 하면서 천천히 일하곤 한다. 퇴근하고 11시쯤 집에 들어와 6시반에 집에서 나가면 잠이 모자라기 때문에 피곤해서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하지만 관리자의 눈에 보이는 건 나의 집중력이 아니고 '근무시간'이라는 '숫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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