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2021. 8. 12. 23:09

영화 <문영> 포스터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올 때, 왠지 이 영화를 꼭 다시 보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2017년 1월 개봉한 <문영>이 내게는 그런 영화였다. 2018년 넷플릭스를 처음 이용하게 되었을 때, 마법같이 <문영>이 메인에 떠있었다. 그렇지만 넷플릭스에 있으니 천천히 봐야겠다며 우물쭈물하던 사이, 넷플릭스에서 <문영>이 사라졌다ㅠㅠ

그렇게 2021년이 되어서야 <문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런 가족 영화(족가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가족은 화목하다는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사회에서, 현실 세계 어딘가에 숨어있는 불행을 조명하는 것은, 행복한 이들의 판타지를 깨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공감을 통한 위로를 준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선택하지 않은 혈연을 떠나 내가 선택한 인연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편견을 깨면서 말이다.

사족 : 김태리의 연기는 정말 놀랍다. 이 영화의 강렬함은 마지막 장면의 김태리로부터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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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21. 4. 3. 23:23

며칠 전 팟캐스트 '뇌부자들'에서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라는 책을 소개하는 걸 들었다.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흥미로운 내용인 듯했고 좋은 책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 문장에서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우리가 암에 걸린 사람을 비난하지 않듯, 정신병에 걸린 사람 역시 비난 받을 게 아니다." 라는 말.


지구상의 사람들은 정신병 혐오를 내면화하고 있다. '정신병'을 욕설로 쓰는 강한 혐오부터, '나는 상담이 필요한 정도까지는 아냐.' 하는 약한 혐오까지.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어서 정신과를 처음으로 방문하기까지 망설이는 시간이 아주 길었다. '내가 그정도로 아픈 것일까? 진단을 받고 나면 진단명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면서.


정신/심리 관련 매체에는 그런 말들이 자주 나온다. 정신의 병은 신체의 병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약하거나 의지가 없어 걸리는게 아니므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사회의 정신병 혐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 치료가 필요하지만 전문가를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으려면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아니, 절실하다. 하지만 "신체의 병과 같이 정신의 병도 비난할 일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아닌데. 신체의 병도 비난받던데.' 하며 실소하게 된다.


어디서 이런 말을 하고 다니진 못하지만, 아픈 사람들은 본인의 건강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특별한 계기를 말할 수가 없다. 건강 관리가 능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정말로 자연스럽게 체화되었다. 그래서 암에 걸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지 못한 거라며 나 자신을 질책했다. 독감이 유행할 때 건강관리 잘 하라는 말이 주변에서 자주 오가는 것을 보면, 남들도 나와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바이러스의 침투는 개체의 자의적인 노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임에도 그런 말들을 주고받는다.


건강 관리도 능력이라는 말이 거짓말인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나를 포함한 우리 회사 사람들은 아플 때면 병가를 쓰는 게 아니라 연차휴가를 사용한다. 며칠 없는 연차휴가를 많이 소진해서 연차를 쓰기 힘들면 아파도 참고 꾸역꾸역 출근한다.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프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면서. 


정신의 병도, 신체의 병도 잘못한 일, 비난받을 일이 아니면 좋겠다. 그렇지만 코로나 백신을 맞고 면역반응으로 고생하는 간호사들조차도 쉬지 못하고 바로 출근하는 걸 보면, 우리에겐 정말로 아플 권리가 없는 듯하다. 이런 환경에서 정신의 병이 신체의 병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게 인식 개선의 효과가 있기나 할까 싶은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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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후기2021. 3. 10. 20:02

간담회 다시보기 : youtu.be/D0RJ0CeFQSo

 

지금 살고 있는 '방'을 구한 것이 작년 2월, 벌써 1년이 지난 일이다. 당시 방을 구하는 과정은 SPA 브랜드가 생기기 전의 청바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해외에서 수입된 SPA 브랜드에서 큰 사이즈의 청바지도 나오지만, 내가 10대였을 땐 그런 브랜드가 흔치 않았다. 옷을 사러 가면 항상 점원에게 가장 큰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실망하여 다른 매장으로 옮겨서 같은 대답을 듣는 것의 반복이었다. 뚱뚱한 내 몸이 창피했고, 점원이 나를 속으로 비웃고 있진 않을까 걱정했다.

전세를 구하면서는, 내가 가진 돈으로 만족스러운 집을 얻는 것이 불가능했다. 옷가게에서 점원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처럼, 중개인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걱정했다. '겨우 이 정도 돈밖에 없으면서, 깔끔하고, 넓고, 외풍이 없고, 바퀴가 나오지 않고, 반지하가 아닌 집을 원하고 있는 거야?'하고. 내가 가진 돈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

이런 부끄러움이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나보다. 간담회의 한 패널은 본인의 주거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거 환경의 열악함을 이야기 하는 게 부끄럽다고 하셨고, '방 말고 집에 살고 싶다'인터뷰에 참여하는 청년들도 쉽사리 본인의 주거 환경에 대해 입을 떼지 못한다고 한다. 주거 환경을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레 경제적 능력이 짐작되기 마련이니까.

간담회에서 가장 어이 없고 웃겼던 부분은 청년주택 셰어형에 비혼 이성 커플은 입주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동성이거나, 혈연 관계의 이성만 셰어형에 입주가 된다고. 만들어진 지 6개월밖에 안 된 청년주택이지만 '관례상'비혼 이성 커플은 살 수 없다고 했다. 입주예정자분이 서울시 청년주거정책과에 이러한 관례가 정책인지 문의했더니 공무원분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너무 웃겼다. '결혼하지 않은 이성 커플이 함께 사는 것을 국가가 지원해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대한민국에서는 혼인 신고를 해야만, 그 종이 쪼가리가 있어야만 정상가족으로 인정되어 섹슈얼리티 실천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말이라 웃겼다.

청년주거간담회에서 임대차 3법이 왜 악법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질의할 수 있었다. 작년부터, 세입자의 임대차계약 갱신 청구권이 생겼으며, 계약 갱신시 5% 이상 보증금을 인상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이 실행되었다. 세입자를 보호하려 만든 법안이지만, 내가 접한 매체들에서는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가 폭등하고, 매물이 없어 서민들이 고생한다는 내용만 볼 수 있었다.

사실 임대차 3법을 통해 원래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된 세입자는 전체의 70%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30%는 전세 신규 계약이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임대인들은 기존 계약 갱신시 보증금을 크게 상승시켜 목돈을 굴리는 게 불가능해졌으니 전세로 주던 집에 실입주 하게 되고, 게다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임대인들이 월세를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 전세 매물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신규 임대차 계약 실행시에는 보증금 인상 제한이 없어 결과적으로 전세는 폭등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임대차 3법은 악법이라서 서민을 괴롭히는 게 아니고, 임대인 눈치를 보느라 누더기 입법을 했기 때문에 서민을 괴롭히게 된 것이었다. 폐지가 아니라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자본주의의 끝이라 볼 수 있는 뉴욕에서도 보증금은 최대 1~2% 정도만 올리는 권고안을 지킨다는데. 우리나라는 정말로 있는 사람들의 탐욕을 지켜주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옷이 내 몸에 맞지 않는걸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내 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외모를 통제하기 위해 작은 사이즈로 나오는 옷이 잘못된 것이다. 방도 마찬가지다. 내가 돈이 없어 집다운 집이 아닌 좁은 방에 사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반지하가, 옥탑방이, 좁고 외풍이 드는 방이 존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공간을 주거용으로 허가한 정책이 잘못된 것이다. 몸을 옷에 맞출 게 아니라, 옷을 몸에 맞춰야 하는 것처럼, 구질구질한 방이 집 다운 집이 될 수 있게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집 다운 집에 살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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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