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2022. 10. 13. 00:25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 포스터

수험생 시절, 친구들과 몰래몰래 보던 슈퍼스타K4는 큰 위로였다. 얼른 수시 합격하고 무대를 생방송으로 보고 싶단 마음에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많은 무대 중에서도 단연 우리를 설레게 했던 건, 두 미남의 "먼지가 되어" 무대였다. 경쟁 무대였지만 완벽한 하모니였고, 둘 중 하나는 떨어져야 하는데 심사위원이 '슈퍼패스'를 사용해서 둘다 합격할 수 있었던 감동의 무대였다.

난 무사히 대학에 합격했고 날 빠져들게 했던 그 가수, 정준영의 첫 미니앨범이 나왔다. 슈퍼스타K4에 내가 덕질하던 가수가 출연하면서,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많이 친해졌고, 그 분이 소개시켜준 것인지 미니앨범의 크레딧엔 익숙한 이름들이 자주 보였다. 나는 그 미니앨범의 모든 곡을 사랑했다. 그 곡들에 담겨있던 설렘, 아픔, 반항심, 똘끼를 사랑했다. (지금은 버렸지만)앨범을 구매했고 듣고 또 들었다.

그랬었는데... 그는 몇년 뒤 성범죄자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덕후까진 아니었고, 라이트한 팬 정도였지만 그래도 배신감이 적지 않았다. 그와 친하게 지냈던 내 최애가 걱정되었다. 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은 그의 '성덕'이었다. 팬싸인회에 가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도 가수가 이름을 써주는. 다른 누군가의 덕후가 되어본 사람으로서, 내 삶과 인간관계가 그를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에 유독 기차 타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기차를 타고 최애를 만나러 가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마음아팠다.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얼마나 상실감이 컸을지. 연예인은 일반인인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지만서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만큼 범죄 사실이 밝혀졌을 때 더 비난 받게 되고, 더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먼지가 되어'와 함께 나타났던 그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슈퍼스타K4, '먼지가 되어' 캡쳐


감독님이 정준영의 팬이었다는 건 우연히 알고 봤어서 정준영 얘기가 나올 것이란 건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지만, 영화는 그 뿐 아니라 다른 성범죄자 연예인과 그 덕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영화 중반부에 또 나를 많이 위로했던, 하지만 성범죄자가 된 이의 덕후가 나와서, 깜짝 놀랐으면서도 참담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외국 생활을 할 때 외로웠던 내 마음을 많이 달래주었던 사람이 성범죄자라니.

어두운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영화 <성덕>은 최소 10분에 한번 빵터지는 장면이 있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술 없인 할 수 없는 얘기라며 요거트 막걸리를 만들어 마시자는 장면에서 터져버린 웃음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간접적인 피해자이자, 본인이 가해에 가담한 것은 아닐지 고민하는, 최애를 향한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성덕들을 위한 웃음치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여기서 이 사람이 나온다고?', '이 얘기를 이렇게 풀어간다니?' 하면서 웃기는 장면이 많아 등장인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영화라 이만 줄이겠다. 영화 내용은 극장에서 많이 확인해주셨으면 좋겠다.

<시놉시스>
10대 시절을 바쳤지만 스타에서 범죄로 추락한 오빠! 좋아해서 행복했고 좋아해서 고통받는 실패한 덕후들을 찾아 나선 X-성덕의 덕심 덕질기를 담은, 2022년 실패 없을 올해의 최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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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후기2022. 9. 4. 18:20

뒤늦게 써보는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1일 후기. 음악 얘기는 빼고.
1. 이동수단
지난 8월 6일 토요일,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있었던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수인분당선 배차간격이 극악이라 바로 환승하면 1시간 30분, 타이밍이 안 맞으면 2시간도 넘게 걸렸기 때문에 렌트카를 타고 가야하나 잠시 고민했었다. 하지만 주차 공간이 부족할 수 있고, 바닷바람과 모래에 차가 상할 수 있다는 주최측의 공지를 보았고, 락페에서 맥주 한잔은 마시고 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2. 짐
입장 전 소지품 검사가 있을 것이라고 해서 홈페이지에서 금지 물품을 잘 읽어보고 짐을 쌌다. 돌아다니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볍게 싸는 것도 포인트였다. 슬링백에 손수건과 보조배터리를 넣고, 350mL 짜리 보온병에 찬물을 담아갔다. 현장에서 줄서서 물 사먹는 시간과 돈이 아깝고, 쓰레기도 줄이기 위해 물을 챙긴건데 너무 더웠기 때문에 물 2병과 아이스크림 하나를 행사장 내에서 더 살 수밖에 없었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오래 서있으니 다리와 발바닥이 아팠다. 쿠션 없는 샌들을 신고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3. 마스크
발권과 입장이 오래 걸리진 않았으나 행사장 내부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고(누적 관객 13만명이라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도 엄청 많았다. 나만은 살아남으려고 더워도 마스크를 꼭꼭 썼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어서 락페를 다녀온 후 월요일까지 기침을 하거나 하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퇴근 후 집에 오는 길에 자가진단키트를 이용해보니 음성이라 맘이 놓였다.

4. 더위
오후 2시쯤 달빛축제공원에 도착해서 생맥 500cc를 마셨다. 오후 5시쯤이 되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몇년 전, 옥토버페스트에서 1000cc 맥주 두 잔을 마시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미식거리는 게 꼭 숙취같았다. 평소 주량을 생각해보면 500한잔 마셨다고 이럴 리가 없었는데.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면 꼭 가보려고 벼르고 있던 것이었다. 방학 땐 늘 뭔가를 하느라 시간이 없었던데다가 락 페스티벌 티켓값은 소득 없는 대학생에게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전파되기 시작했고 락페스티벌은 열리지 않았다. 로망으로만 남겨뒀던 락페스티벌이 드디어 열린다고 하자 당장 티켓팅을 했다. 슬램을 즐기며 뛰어놀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었다.
8월 초의 토요일은, 중간중간 물을 뿌려주긴 했으나 금방 말라버릴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컨테이너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무더위쉼터가 있었으나 그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거기서 좀 쉬었어야 했는데. 슬램을 기대했으나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었고 그냥 얌전히(?) 앞에서 놀았다.
공연을 볼 땐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는 긴장이 풀렸는지 머리가 너무너무 아팠다. 나의 모든 행동을 후회했다. 맥주를 마시지 말걸. 락페스티벌에 오지 말걸. 아니 그냥 집에서 나오지 말걸.
씻는걸 싫어하지만 입고 갔던 검은 티셔츠에 소금기가 보일 정도로 땀에 절어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에서 난 곧장 잠들었고 눈을 뜨니 다음날인 일요일 저녁 6시였다.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에 공연을 봤다면 월요일 출근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 다행히 더이상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내 인생 첫 더위먹음이었고 나는 생각보다 약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5. 추억미화
에어컨 아래서 자고 일어나니 마취에서 깨어난 것 마냥 안 좋은 기억은 싹 사라졌다. 괜히 갔다고 후회할 땐 언제고, 유튜브에서 직캠을 찾아봤다. 신나게 슬램하던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다시 갈 수 있을진 정말 모르겠지만, 9월이나 10월 날씨 좋을 때 하는 페스티벌이 있다면 가서 정말 신나게 놀고 오리라는 다짐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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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
에세이2022. 8. 14. 00:19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후, 일상에서 고찰할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었다. 많은 것들이 새로웠다. 몇 년 전까지는 그런 새로운 발견을 정리해서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리곤 했었다. 여러 사람이 관심을 주고,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었다. 외부 매체에 기고하는 것은 더욱 즐거웠다.

하지만 요즘은 영 업로드를 하지 못했는데, 글을 쓰지 못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절대적인 시간 부족이었다. 블로그에 자주 글을 쓰던 시기는 대학을 휴학 중일 때라 정말 남는 게 시간이었다. 지금은 퇴근하고 나서 잠시 쉬다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운동을 하고 오면 이내 잘 시간이 된다. 그 사이에는 무언가를 작성할 시간도, 작성을 위해 사유할 시간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공부도, 고민도, 생각도 거의 하지 않다보니 지적 능력이 많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면 이것은 나만 겪는 현상이 아니었다. 심하게 말하면 "지적 능력을 팔아 돈을 번다"고 얘기할 정도로, 직장에서의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나의 지성이 사라져갔다. 정신병도 지적 능력을 퇴화시키는데 한몫했고, 애석하게도 정신병이 앗아간 총명함은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떨어졌구나' 인지한 다음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노력을 통해 조금씩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직장에서 기술 문서를 작성해야 할 땐 속으로 오열하며 한 자 한 자 작성했었는데,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건 불가능했으나, 꾸준한 치료와 개인적 노력으로 트위터 이상의 긴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웠던 상태는 이제 벗어났다.

글을 쓰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보일만한 글감이 없어서였다. 대학생 때야 방학하고, 시험도 보고, 이런저런 활동을 시도해보기도 했는데 직장인의 삶이란, 아무리 들여다봐도 새로운 구석을 찾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쓰자니 내가 특정될까 두려웠다. 정치 평론을 하기에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여러 사람이 하는 이런저런 말들에 내가 한마디 더 얹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나의 가치관에 비추어보았을 때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여 적을 만들고 싶지 않은 비겁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 글쓰기란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제 트윗 이상 길이의 글을 쓸 수 있는 정신 상태는 만들었으니 퇴사 후 발간될지도 모르는 퇴사 에세이의 소재는 종종 기록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기장에 주로 기록할 것이고, 그런 내용을 공개적으로 발행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 이 블로그에 글이 올라오게 될지도 불투명하다. 퇴사를 언급하였으나, 지금 당장은 퇴사할 생각도 없고 우리 회사가 조금은 좋다. 정년은 언젠가 다가오니까 그때쯤 모아왔던 썰을 방출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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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퍼포린